'구판장'까지 찾는 MZ세대.. '겨울 와인'에 빠져든다

이희권 기자 2021. 10. 2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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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라

공부하고 즐기는 문화 확산

고급와인 절반 가격에 인기

스마트폰 검색해 취향 찾아

업계, 겨울철 성수기 앞두고

산지 등 추천 리스트 다양화

지난 24일 수도권 와인 애호가 사이에서 가장 핫한 와인 성지 중 하나로 떠올랐다는 서울 광진구 자양시장 새마을구판장을 찾았다. 와인 좀 마신다는 사람들은 반드시 방문하는 것으로 유명해진 이곳의 식자재 마트 와인 코너는 일요일 저녁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별다를 것 없는 동네 슈퍼지만 지난해부터 가게 대표의 취미로 와인을 취급하기 시작하면서 전통시장 식자재 마트답지 않은(?) 남다른 와인 리스트와 와인을 알면 알수록 놀랄 수밖에 없다는 가격으로 단숨에 업계에서 인기를 얻었다. 특히 방문객 대다수가 2030 젊은이들인 점이 눈에 띄었다. 매장 한구석 와인 코너에 모인 젊은 고객들은 하나같이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든 채 저마다 신중하게 와인을 고르고 있었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확고하게 자리 잡은 와인 검색 앱 ‘비비노(Vivino)’를 통해 와인의 평점과 정보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날 새마을구판장을 찾은 정모(30) 씨는 “그동안 말만 듣다 주말에 큰마음 먹고 인천에서 찾아왔다”면서 “조양마트 등 주변 와인 성지들을 한 번에 돌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의 고품질 와인으로 이름을 높이고 있는 ‘라 크레마 소노마 코스트 샤르도네(2019·750㎖)’는 할인가 4만2900원에 판매됐다. 통상 같은 와인이 백화점이나 전문점에서 수입사 책정 가격인 7만 원대에 팔리는 것을 감안하면 눈이 번쩍 뜨이는 가격이다. 최근 2030세대 와인 애호가들은 새 와인이 매장에 풀릴 때마다 온라인 와인 커뮤니티를 통해 “무조건 쟁여 놓아야 하는 가격에 나왔다” “이 가격이면 미국보다도 싼 것”이라며 재빠르게 정보를 주고받는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와인 저변이 넓어져 이제 조금만 비싸게 들여오면 고객들이 다 알아채고 지적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행사 때면 현지에서보다 오히려 국내에서 더 저렴하게 판매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와인이 주류업계 주요 전쟁터로 떠올랐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백화점이 아니라도 통상 ‘보르도 5대 샤토’로 불리는 프랑스 최고급 와인을 편의점이나 전통시장 구판장에 자리 잡은 와인 코너에서도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저변이 넓어지면서 와인 입문자들도 그간 획일화된 추천 리스트를 벗어나 특색 있는 자신만의 품종, 산지, 빈티지, 와이너리를 얼마든지 찾아 나설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유흥시장이 위축된 사이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라 공부하고, 알고, 즐기는 술 문화가 확산하면서 이에 들어맞는 와인 소비도 늘어났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와인 수입량은 이미 맥주 수입 규모의 두 배가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와인 수입 규모는 지난해 처음으로 맥주를 추월했는데 올해 들어서 그 격차가 훨씬 벌어진 셈이다.

이에 대형 유통·주류업체들도 와인 시장에 ‘진심으로’ 뛰어들었다. 몇몇 중소 유통사 이외에 신세계, 롯데, 하이트진로 등이 한때 구색 갖추기, 시장탐색용으로 갖고 있던 와인사업부는 코로나19 속에서 주류시장 중 사실상 홀로 성장하는 사업부문으로 변신했다. 유통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와인 사업에 전력으로 뛰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신세계L&B는 와인 시장의 성장과 함께 “신세계 하면 와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업계 1위 자리를 굳혔다. 롯데칠성음료 역시 올해 와인이 전체 취급 주류 품목 중 세 번째로 올라서며 맥주 부문을 위협하는 등 와인 부문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이트진로도 그간 소극적이었던 와인 부문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올해 상반기까지 와인 부문 매출이 173억 원으로 집계, 전년 동기와 비교해 78% 성장했다고 밝혔다. 지난 8월에 한정수량으로 선보인 1000만 원대 고가 와인인 ‘르로아 와인’이 출시 한 달여 만에 완판되는 등 프리미엄 라인은 물론, 대형마트와 편의점의 1만 원대 ‘가성비 와인’까지 가격대를 가리지 않고 와인 소비 시장이 성장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통상 와인은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부터 연말 모임이 많은 겨울이 최고 성수기로 꼽힌다. 이에 대목을 맞은 수입업체들과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전문점 등 유통채널은 애호가는 물론 와린이(와인+어린이)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와인을 찾아 나섰다. 수입업계 관계자는 “틈날 때마다 온라인 와인 커뮤니티 등을 확인하며 수요가 있을 만한 와인을 찾고 있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비유하자면 국내 와인 시장은 이제 막 오프너로 마개를 딴 상태”라고 말했다.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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