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물길따라 걷다보니.. 가을 한복판에 닿았습니다

박경일 기자 2021. 10. 2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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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류봉에서 초강천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월류봉 둘레길 초입. 신발 끈을 조이고 월류봉을 출발한 직후에 물길을 끼고 있는 이런 숲길을 지난다. 천변 풍경이 가을 색으로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월류봉 둘레길 두 번째 구간 ‘산새소리길’. 바위 벼랑에 매달듯 놓은 목조 덱을 따라 걷는 이 길은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무장애길’이다.
양산팔경 금강둘레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강선대.
시외버스 취급이 중단된 쇠락한 황간면의 버스터미널.

■ 충북 영동 금강·초강천·석천 둘레길

‘양산팔경’ 중 6곳 품은 6㎞

소나무 숲 한가운데 캠핑장

강변 옆 단풍 화려한 산책로

초강천 절벽에 잔도 놓은듯

월류봉 보면서 걷는 둘레길

가을色 물드는 지금이 최고

반야사 뒤엔 ‘백화산 둘레길’

억새꽃 반짝이는 천변 지나

민가 하나 없어 한적한 산책

35m가 넘는 영국사 은행나무

박연이 자주 찾았던 옥계폭포

이젠 쇠락한 황간역도 가볼만

영동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충북 영동에는 가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둘레길이 있습니다. 둘레길이라면 대개 산의 둘레를 도는 길인데, 영동의 둘레길은 ‘물의 둘레’를 돕니다. ‘양산팔경 금강둘레길’은 금강의 물길을 돌고, ‘월류봉 둘레길’은 수묵의 풍경 같은 월류봉에서 반야사까지 줄곧 초강천 물길을 끼고 갑니다. 반야사에서 다시 경북 상주의 옥동서원을 잇는 ‘백화산 둘레길’도 석천의 물길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이 세 곳의 둘레길은 어느 곳이 더 낫다고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저마다 근사한 풍경과 정취를 품고 있습니다. 호젓하게 가을을 마중하거나 떠나보내기에 맞춤한 길. 되도록 천천히 걸었던 그 길의 이야기입니다.

# 명승을 걷다…양산팔경 금강둘레길

옛사람들은 충북 영동군 양산면을 끼고 흐르는 금강 일대 명승 여덟 곳을 묶어 ‘양산팔경’이라 불렀다. 여덟 개 명승 중에서 여섯 개가 모여있는 금강 변에 그 경관을 따라 걷는 ‘양산팔경 금강둘레길’이 있다. 양산면 송호리를 끼고 흐르는 금강을 따라가다 강을 건너 출발한 자리로 거슬러 되돌아오는 6㎞ 남짓한 길이다. 양산팔경의 여덟 경치 중에서 1경 영국사와 7경 자풍서당을 빼고 나머지 경관이 그 길 위에 다 있다. 2경 강선대, 3경 비봉산, 4경 봉황대, 5경 함벽정, 6경 여의정, 8경 용암. 이렇게 여섯이다. 우선 영국사는 여기서 멀다. 금강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천태산 아래 절집 영국사와 그 절이 거느린 은행나무 노거수 얘기는 뒤에서 다시. 7경 자풍서당은 경치보다는 ‘글 읽는 소리’로 양산팔경에 꼽혔던 곳이니 빠뜨린대도 뭐 그리 아쉽진 않다.

양산팔경 금강둘레길의 가장 큰 매력은 편안하다는 것. 강기슭을 오르내리는 구간도 있긴 하지만 길이 가파르지도, 굽이치지도 않아 몸도 마음도 다 가볍다. 둘레길의 출발은 소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르고 있는 송호국민관광지로 정하는 게 좋겠다. 주차장과 캠핑장을 비롯한 편의시설이 그쪽에 있어서다.

꼿꼿한 선비처럼 도열한 솔숲 너머로 금강이 유유하게 흘러가는 이곳의 풍경은 ‘국민관광지’란 건조하고 계몽적인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너무나 낭만적이다. 특히 붉고 노란 단풍으로 강변이 물드는 가을에는 더 그렇다. 송림 한가운데 근사한 캠핑장이 있고,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를 끼고 이어지는 낭만적인 산책로가 있다. 여기는 단풍도 화려하지만, 단풍이 지고 난 뒤 양탄자처럼 깔리는 낙엽의 초겨울 정취도 못지않다.

# 결정적 장면…강선대의 가을 달

송림 너머 강변의 바위 위에 운치 넘치는 정자가 있다. 양산팔경 중 가장 먼저 만나는 제6경 여의정(如意亭)이다. 여의정은 송호국민관광지의 빽빽한 솔숲 너머 강변에 있다. 이곳의 솔숲은 400년 전쯤 지금의 군수나 도지사쯤 되는 황해도 연안부사 벼슬을 지낸 만취당 박응종이 관직을 내려놓고 돌아와서 소나무를 심어 기른 자리다. 지금의 소나무는, 그러나 그때 심어진 게 아니다. 400년 된 노송은 일제강점기에 철도 침목으로 쓰기 위해 모두 베어지고 말았다.

지금의 소나무는 그 이후에 심어 가꾼 것이지만, 그래도 수령 100년 남짓한 아름드리로 자라나서 솔향 짙은 근사한 솔숲이 됐다. 여의정은 낙향해 소나무를 심고 그 그늘 아래서 후학을 길러냈던 박응종을 기리기 위해 1935년 후손들이 지은 정자다. 정면 두 칸, 측면 한 칸의 소박한 정자지만, 발돋움하듯 바위를 딛고 지어져 존재감이 뚜렷하다. 비록 콘크리트 자재로 지어진 정자지만, 바위 위의 미륵불 입상 및 깨진 석탑과 어우러져 제 나이보다 훨씬 더 오래된 듯 고색창연한 멋을 풍긴다.

양산팔경은 하나하나 장소마다 잘 어울리는 시간이 따로 있다. 계절에 따라 팔경에 대한 감상이 다른 이유다. 가을이 물들기 시작하는 지금과 딱 맞는 곳이 송호국민관광지에서 강물을 따라 내려가다 봉곡교로 금강을 건너면 만나게 되는 2경 ‘강선대’다. 강선(降仙). 선녀가 내려왔다는 자리다. 노송이 뒤틀고 자라는 10m쯤 되는 바위 절벽 강선대에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육각 정자가 있다.

강선대는 양산팔경이기도 하고, 함벽정을 중심에 두고 정한 ‘함벽정팔경’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함벽정팔경은 여덟 곳의 명소를 정하고 그곳의 가장 ‘결정적 순간’을 읊는 방식으로 정했는데, 강선대의 결정적 순간은 ‘가을 달이 떴을 때’다. 그걸 일러 ‘선대추월(仙臺秋月)’이라 한다.

아름다운 금강의 정취만 해도 좋은데, 팔경의 명소가 곳곳에 있고, 강물소리 들리는 청량한 숲길과 평화로운 가을 들판과 마을이 있으며, 옛사람들의 시간까지 잠겨있으니 이 길 위에서 더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 입체적 아름다움의 공간, 월류봉

양산팔경에서 금강의 지류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천팔경’이 있다. 한천팔경은 초강천을 끼고 있는 황간 일대의 월류봉을 중심으로 펼쳐진 풍경 여덟 곳에 우암 송시열이 이름 붙인 명승이다. 한천팔경의 최고 절경은 단연 월류봉이다. 선경(仙景)을 그린 병풍 속 그림과 같은 봉우리와 그 아래를 휘감아 도는 맑은 물이 일품이다. 한천팔경의 다른 명소가 궁금하다면, 월류봉을 바라보는 자리에 있었다는 송시열의 서재 터에다 1910년 유림들이 세운 한천정사를 들어가 보자. 한천팔경 여덟 곳의 이름이 한천정사 기둥 주련으로 걸려있다.

한천팔경 1경인 월류봉의 경관을 완성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이 정자다. 월류봉 다섯 봉우리 중 가장 앞쪽의 봉우리 끝에다 지난 2006년에 세운 정자는 마치 화룡점정 같다. 월류봉을 빼고 한천팔경의 나머지 일곱 곳은 자취도 희미하고, 감흥도 크게 일지 않으니 옛 선비들이 한천팔경을 지은 뜻이 오로지 월류봉에 있던 듯하다. 그 월류봉이 가장 아름다운 때가 지금처럼 가을 색으로 물들기 시작할 때다.

월류봉을 휘감고 흐르는 초강천의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절집 반야사가 있다. 월류봉에서 반야사까지 물길에 바짝 붙어 이어지는 길이 ‘월류봉 둘레길’이다. 둘레길 이름에 월류봉을 앞세우긴 했지만, 길이 도는 건 월류봉이 아니다. 길은 백화산 자락을 끼고 초강천의 물을 따라 이어진다. 둘레길의 절반쯤은 물가에 붙여 세운 나무 덱이다. 공간이 없어 길이 끊어진 천변의 벼랑에 잔도를 놓듯 덱을 덧붙여 길을 놓은 까닭이다. 길이 자연스러웠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나무 덱 덕에 내내 초강천의 물길에 딱 붙어서 걸을 수 있다.

월류봉 둘레길의 전체 길이는 8.4㎞. 길이 워낙 순해서 세 시간 남짓이면 충분한데, 이 길을 테마에 따라 3개 구간으로 잘게 나눴다. 월류봉에서 원촌교를 건너 완정교까지 2.7㎞가 첫 번째 구간인 ‘여울소리길’이고, 완정교에서 목교를 지나 우매리까지 잔도로 이어지는 3.2㎞가 두 번째 구간 ‘산새소리길’이다. 그리고 우매리에서 반야교를 건너 반야사까지 2.5㎞가 세 번째 구간인 ‘풍경소리길’이다. 이 중 두 번째 구간인 산새소리길은 길이 완만한 데다 경사나 턱이 없어 휠체어도 다닐 수 있는 ‘무장애길’이기도 하다. 이 길의 가장 큰 매력은 호젓하다는 것이다. 여울을 흘러가는 물소리와 이따금 수면 위로 날아오르는 물오리 말고는 아무것도 끼어들지 않는다.

# 물소리, 새소리와 걷다…백화산 둘레길

월류봉 둘레길 끝에 절집, 반야사가 있다. 절집의 이름인 ‘반야(般若)’는 불가에서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꿰뚫는 지혜’를 뜻한다. 반야를 상징하는 건 사물의 본질을 보는 지혜로 공덕을 쌓았다는 문수보살. 그러니 반야사의 가장 빼어난 자리에 문수보살을 모신 문수전이 있다. 문수전은 절 뒤편의 물길을 굽어보는 암봉인 망경대에 절묘하게 앉아있다.

만경대의 문수전은 지혜를 보는 법당이자, 가을을 내려다보는 훌륭한 전망대다. 반야사를 넘어서면서 초강천의 이름은 ‘석천’으로 바뀌는데, 문수전이 들어선 곳이 발아래로 사행하는 석천의 물길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다. 문수전에서는 석천의 물길 주위 숲이 마치 바다처럼 펼쳐진다. 아직 단풍의 기미는 없지만, 이제 며칠 뒤면 하나둘씩 울긋불긋하게 물들어가리라.

이곳 문수전과 함께 반야사의 명물로 꼽히는 것이 요사채 뒤편에 병풍처럼 펼쳐지는 호랑이 형상의 파쇄석이다. 절집이 마주 보고 있는 백화산 호성봉 자락의 너덜지대가 기묘하게도 호랑이 형상이다. 허물어진 너덜지대가 호랑이 머리 및 다리와 비슷하고 치켜올린 꼬리까지도 영락없다.

월류봉 둘레길은 반야사에서 끝나지만, 반야사에서 석천의 물길을 거슬러 또 다른 걷기 길이 이어진다. 경북 상주의 옥동서원까지 이어지는 5.6㎞의 ‘백화산 둘레길’이다. 본래 길의 이름은 ‘호국의 길’인데, 이런 매혹적인 길에 ‘호국’ 운운하는 이름이 마뜩잖았던 이가 많았던지 걷는 이들 사이에서는 ‘백화산 둘레길’로 부른다.

이 길 위에서는 걷는 내내 물소리와 새소리가 따라온다. 경관은 그윽하고, 걷기는 편안하다. 길은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옥동서원까지 이어지는데 거기까지 1시간30분 정도가 걸린다. 억새꽃 반짝이는 천변을 지나고, 흩어진 마을의 자취를 딛고 가면서 길은 민가 하나 없는 무인지경의 자연경관을 가로지른다. 반야사에 차를 세워두고 왕복한다면 왕복 세 시간 정도의 짧지 않은 거리지만, 그 길이 보여주는 훌륭한 가을의 정취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짧게 느껴질 정도다. 이 길은 아껴가며 되도록 천천히 걷자.

# 은행나무 노거수, 그리고 폭포

둘레길에서 멀어 뒤로 미뤄둔 영국사 얘기를 해보자. 절집 영국사는 신라 문무왕 때 창건했다는 천년고찰이다. ‘충청의 설악’이라 불리는 천태산 자락에 들어선 고찰 영국사는 절집이 건너온 시간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은행나무로 이름났다.

영국사 은행나무는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거대하다. 나무의 키는 35m에 달하고 둘레가 11m를 넘는다. 그 앞에 서면 뒤편의 절을 다 가리고도 남는다. 은행나무는 유독 둥치와 가지가 검은 것이 특징. 나뭇잎이 샛노랗게 물들면 나뭇가지의 검은색과 노란색 잎이 대조를 이뤄 가히 장관이다. 은행나무는 이제야 천천히 노란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은행잎이 절정의 노란색으로 물들 때가 가장 좋지만, 은행잎이 다 떨어지고 난 뒤에도 주위가 온통 노란색 은행잎으로 뒤덮여서 탄성을 자아낸다. 나무 하나가 내어놓은 노란 잎이 온천지를 노랗게 만들어낸 장면을 보면 은행나무가 마치 귀물처럼 느껴진다.

영동을 대표하는 명소가 옥계폭포다.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 우륵과 함께 한국의 3대 악성으로 꼽히는 박연. 영동 출신인 그가 고향에 돌아오면 자주 찾았다던 곳이 바로 옥계폭포다. 자태로 보면 어디 깊은 오지에나 있을 법한데, 턱 앞까지 차로 가서 폭포 앞에 설 수 있다. 30m가 넘는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가 무협지 같은 풍경을 빚어내는 곳이다. 보통 이즈음에는 물줄기가 가늘어지거나 끊기는데, 올해는 가을에 비가 많아 와서 그런지 폭포가 제법 힘차다.

# 늙고 쇠락한 역에 시(詩)를 내걸다

황간역이 있는 황간면 소재지는 아궁이에서 불씨를 뒤적이듯 추억 시간을 뒤져볼 수 있는 곳이다. 황간은 철도가 물류의 중심이던 때 무연탄과 목재, 흑연 등의 화물을 취급하며 번성했다가 고속도로 개통과 지역 인구 감소로 급속도로 쇠락했다. 오래전에 떠나보냈던 과거의 풍경들이 마을 곳곳에 마치 영화세트처럼 남아있는 이유다. 황간에서 ‘오래된 것’들은 쇠락의 속도가 빨라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그냥 놓아둬 지켜진 것들이다.

면 소재지 한복판에 30∼40년 전쯤 지어졌다는 서도아파트는, 당시 서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주상복합’ 건물이다.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 지하 상업공간에서 한때 나이트클럽까지 성업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열흘 전쯤 시외버스 취급을 중단한 황간버스터미널의 매표창구에는 1986년에 셀로판지로 글씨를 만들어 새긴 할인요금표가 그대로 남아있다. 좋았던 시절의 중심이었던 황간역이 쇠락하자 주민들은 역사 곳곳에다 시(詩)를 적어넣었다. 경제적 가치로는 생존할 방도가 없으니 ‘시가 있는 고향역’으로나마 살려두고자 한 것이었다. 그렇게 역사에 내걸린 ‘외갓집 가는 날’이란 시 한 편. “기차는 / 앞으로 가는데 / 산은 뒤로만 가고 / 생각은 / 달려가는데 /강물은 누워서 가고 /마음은/ 날아가는데 /기차는 자꾸 기어가고.”

■ 둘레길 무인판매대

양산팔경 금강둘레길에는 무인판매대가 두 곳 있다. 하나는 솔숲에 설치된 부추를 파는 무인판매대. 다른 하나는 논 가운데 개방된 공간에서 농산물이나 음료수 등을 파는 무인 가게다. 솔숲의 무인판매대는 텅 비었다. ‘제발 그냥 가져가지 말아달라’는 호소를 적어놓은 걸 보면 양심 불량 손님 때문인 듯했다. 무인판매대에는 바구니에 담은 농산물이 풍성했다. 냉장고에 음료수도 가득했다. 같은 사람이 걷는 길인데 아무도 보지 않는 숲 속 판매대는 장사를 접었고, 개방된 공간의 판매대는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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