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와 '스탈린의 봉투'..전두환 격하, 언론장악하고 도망가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 별세했다. 정치권에선 그의 공·과를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우선 12·12 군사 쿠데타의 주역이지만 야당 뿐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공'이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고인의 자녀가 5·18 영령께 여러 차례 사과하고 참배한 것은 평가받을 일"이라며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공·과를 그래도 볼 수 있는 분 아닌가 생각한다"라며 "6·29 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의 국민 요구를 수용했다. 남북 기본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선언, 토지 공개념 도입을 비롯한 성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가 '군사독재'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쿠데타 이후 전두환 정권의 2인자로 활약했다. 그의 '성과'라는 직선제 도입 역시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마지못해 도입한 것이란 게 정설에 가깝다.
이처럼 빛과 그림자가 있는 그의 정치 역정은 2005년 드라마 '제5공화국'에 담겼다. 배우 서인석씨가 노태우 역을 맡아 열연했다. '태조 왕건'의 견훤 등 선굵은 연기를 했던 서씨는 '물태우'라 불린 노 전 대통령의 캐릭터를 실감나게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때론 비굴할 정도로 속내를 숨기면서도, 결국에는 '1인자'의 자리를 쟁취하는 '2인자'의 모습이었다.
압권으로 꼽히는 것은 마지막 회다. 1996년 구속된 노 전 대통령은 초탈한 표정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며 '스탈린의 봉투 3개' 일화를 언급한다. 사실상 자신이 대통령 시절 발휘했던 '권위주의 통치 기술'이 모두 함축된 내용이었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한 것으로 알려진 이 발언은, 서인석씨의 명연기로 다음과 같이 재탄생됐다.
"마…내가 대통령을 하고 있을 때,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에 와가(와서), 정상회담을 한 적이 있죠. 마 그때 고르바초프가 내한테 얘기해준 게 있는데. 스탈린이 퇴임을 앞두고 후계자인 흐루쇼프를 불러서 봉투를 3개 주면서, 위급할 때마다 하나씩 마 뜯어보라 말했어요.
어느날 흐루쇼프가 정치적으로 어려운 일에 부딪혀 스탈린이 준 봉투를 뜯었더니 '전임자를 격하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더랍니다. 그래서 그대로 시행을 했고 위기를 모면했죠.
한 2년 후에 흐루쇼프는 두 번째 봉투를 뜯었더니 거기에는 '언론을 장악하라'고 나와있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 봉투에는 '후임자에게 정권을 물려주고는 도망가라', 마 그리 써있었답니다. 마…최고 권력자의 자리란 쉬운 게 아니지요."
노 전 대통령은 '5공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전임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 격하에 앞장섰다. 전 전 대통령은 쫓기듯 설악산 백담사로 사실상의 유배를 떠났다. '육사 동기'인 전 전 대통령과 사이도 이때 틀어졌다.
노태우 정권 때 언론장악 시도도 집요하게 이뤄졌다. KBS 및 MBC에 친정부 인사를 앉히려다가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기도 했다.
그가 정권을 물려준 '후임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안정적인 정치기반 마련을 통해 3당합당을 시도했고, YS를 앞세워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도망가는 것'에는 실패했다. YS의 문민정부가 '하나회 숙청'을 필두로 역사 바로세우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 및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 수천억원대의 비자금 조성 등으로 법원에서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다. 국가 원수에 대한 예우도 박탈당했다. 이후 2000년대들어 급속하게 건강이 악화됐고, 10년 넘게 투병생활을 거쳤다. 그리고 26일 향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이 공개한 유언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역사의 나쁜 면은 본인이 다 짊어지고 가겠다. 앞의 세대는 희망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며 "특히 5·18 희생자에 대한 가슴 아픈 부분, 그 이후의 재임 시절 일어났던 여러 일에 대해서 본인의 책임과 과오가 있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장례식은 오는 30일까지 닷새 동안 국가장으로 치러진다. 내란죄로 유죄를 받았기 때문에 국립묘지 안장은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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