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심부름 10만원" 짭짤한 알바?..'사기죄 공범' 몰려 일생 망친다

박용필 기자 2021. 10. 2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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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근 보이스피싱 ‘계좌이체’서 ‘대면 편취’로 범죄 수법 진화
고액 알바 미끼 수거책 모집…자신도 모르게 범죄 연루 속출
해외 거주 주범 대신 실형 처벌…피해 배상까지 떠안을 수도

‘누군가한테 가서 서류를 보여주고 돈을 받아다 통장에 넣어주면 10만원을 주겠다’는 ‘채권 회수 아르바이트’ 광고가 있다. 이 아르바이트를 했다면? 경우에 따라 징역살이는 물론 10만원의 수십배 되는 돈을 물어줘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같이 처벌받는 경우가 최근 늘고 있다.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당해 피해자를 울리는 가해자가 되는 것은 물론 주범 대신 ‘독박’을 쓰기도 한다.

A씨는 지난해 3월 휴대전화 구직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서류를 전송해줄 테니 출력해 누군가에게 가서 보여주고 돈을 받아다 지정된 계좌에 입금해주면 일당 15만원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2300여만원을 받아 의뢰인이 지정한 통장에 넣었고, 3일치 수당 49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 아르바이트 때문에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에서 사기와 사기 미수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형사배상명령도 받았다. A씨는 범죄인 줄 몰랐고, 자신이 챙긴 수익은 49만원에 불과하다고 항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근 3~4년 사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돼 처벌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이 ‘계좌이체형’에서 ‘대면 편취형’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30분 지연 이체’나 ‘지급정지제도’ 같은 금융권의 보이스피싱 예방 제도가 강화돼 계좌이체를 통한 범죄가 어려워지자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돈을 받아오는 수거책들을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계좌이체형’은 3만973건에서 지난해 1만822건으로 급감한 반면 ‘대면 편취형’은 2547건에서 1만5111건으로 크게 늘었다.

문제는 주범에게 이용당한 이들이 배상 책임까지 떠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상당수는 자신이 보이스피싱 수거책인지 모르고 범죄에 가담한다. 그러나 법원은 ‘범죄일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는 정황이 있으면 범죄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판단한다. A씨의 경우 자신이 금융기관 직원이 아님에도 은행의 대출상환증명서 등을 피해자에게 제시하고 “금융기관에서 왔냐”는 피해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점 때문에 재판부는 범죄임을 인식했을 가능성과 상대를 기망할 의사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B씨도 일에 비해 수당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 대부업체의 상호 등을 확인하지 않은 점 등이 범죄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는 정황으로 인정됐다.

대포통장이나 대포폰 개설에 명의를 제공한 경우 범죄임을 정말 몰랐다고 해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전자금융거래법은 대가를 기대하고 통장, 체크카드 등을 양도하는 행위 자체를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목적은 상관없다. 만약 범죄임을 인식할 수 있는 정황이 있었다면 정도에 따라 사기방조죄는 물론 사기죄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특히 사기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을 받게 되면 주범을 대신해 피해금액 전체를 물어내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취득한 이득과 상관없이 공동불법행위자로서 피해자의 손해액 전액을 배상할 책임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법원은 피해자의 과실이 없는 경우 전달책이나 수거책에 대한 형사배상명령 신청을 받아들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 A씨가 법원으로부터 자신이 챙긴 ‘수당’의 수십배에 달하는 금액을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유다.

주범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해외에 있는 주범들이 잡히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난해 검거된 보이스피싱 범죄자 3만9000여명 대부분이 ‘대면전달책’과 ‘수거책’, ‘대포통장 명의 제공자’들이다. 사건을 지휘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주범은 2.1%에 불과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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