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 800만명 첫 돌파에도 대선 국면에서는 노동 정책 논의 '실종'
[경향신문]
정부 ‘공공 비정규직 제로’ 정책
민간으로 확장되지 못해 ‘한계’
정부 공식 통계에서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800만명을 넘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 초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선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원칙이 민간으로 확장되지 못한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8월 기준 전체 임금 노동자(2099만2000명) 중 정규직은 전년 대비 9만4000명 감소한 1292만7000명, 비정규직은 64만명 증가한 806만6000명을 기록했다. 비정규직 비중은 전년보다 2.1%포인트 상승한 38.4%에 달했다.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고용위기를 대응·회복하는 과정에서 정부 일자리 사업과 사회복지·돌봄 서비스 영역에서 비정규직이 많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또 비정규직의 근로여건 지표는 크게 개선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는 일부 성과를 거뒀지만, 민간 영역에서의 비정규직 대책은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정부 추산 20만명가량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지만, 민간 기업들의 정규직 고용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나 정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등 청년들을 중심으로 불공정 논란이 제기됐고, 공공부문도 실질적 처우개선에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은 자회사를 통한 전환은 가능한 방식으로 규정하면서 민간위탁은 기관 자율에 맡겼다. 민간부문에선 현대제철처럼 불법 파견 의혹이 있는 기업이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 전환을 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청년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제도가 있지만, 노동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기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필요하지만, 기업이 신규 채용을 할 때 정규직 중심으로 하도록 정부가 정책을 통해 방향을 유도해야 하는데 어떤 조치도 내려지지 않았다”며 “정책 대응의 공백 지점에서 이런 사태(비정규직 800만명)가 초래됐다”고 분석했다.
■민주노총 “문재인 정부, 초라한 성적표 반성해야” 비판
최근 늘어난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도 비정규직 문제와 얽혀 있지만, 이들은 아직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기도 어려운 상태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교수는 “기간제 일자리는 2년이 넘으면 정규직화해야 하지만 이 법을 피해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코로나19 때문에 더 가속화된 것 같다”며 “고용이 늘어난 것도 임시 일용직이나 비정규직으로 늘어나는 추세여서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대선 과정에서 노동정책은 다른 이슈들에 밀려 거의 언급도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아직 노동 공약을 발표하지 않았고,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공격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노동존중 사회’를 내세운 문 대통령뿐 아니라 보수진영 후보들도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 의제를 강조했던 지난 대선 때와 대조적인 모습이다.
홍준표 후보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비정규직 대책으로 말하지만 이는 불안정 노동이 만연한 상황을 무시한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27일 논평을 내고 “문재인 정부는 이 초라한 성적표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라”면서 “코로나 상황만 탓하고 있기에는, 임기 내내 늘어난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혜리·고희진·강한들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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