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백악관 "종전선언 순서·시기·조건, 한국과 다를 수도"
[경향신문]
‘종전선언으로 북 비핵화 촉진’ 한국과 달리 ‘선 비핵화’ 차이
대화 필요성에는 한뜻…외교부 “양국 긴밀 공조, 협의 계속”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사진)은 26일(현지시간) 한국과 미국이 종전선언의 구체적인 순서나 시기, 조건 등에 대해선 관점이 다를 수 있다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날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 순방 계획을 설명하는 언론 브리핑에서 ‘백악관이 대북정책에 있어 종전선언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느냐. 북한과 대화를 시작할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최근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가 “매우 생산적이고 건설적이었다”면서도 “우리는 각각의 조치를 위한 정확한 순서, 시기, 조건에 관해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외교를 통해서만 효과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고, 외교는 억지력과 짝을 이뤄야 한다는 핵심 전략적 계획과 신념에서는 근본적으로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집중적인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는 것만 말하겠다”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의 언급은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해선 조속히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한·미의 견해가 일치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선 견해차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총회에서 제안한 종전선언 논의의 진전을 위해 한국 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외교 총력전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가 공개적으로 ‘다른 관점’을 언급했다. 미국이 종전선언에 신중한 입장임을 드러낸 셈이다.
한국 정부는 “종전선언이 신뢰 구축을 위한 정치적·상징적 조치이자 정전체제의 법적·구조적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종전선언의 구체적인 문구는 물론 법적·정치적 영향과 효과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종전선언을 비핵화 촉진을 위한 입구로 여기는 반면, 미국은 비핵화 협상이 시작된 뒤 북한의 비핵화 단계에 맞춰 내놓을 수 있는 보상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미 간 인식차로 종전선언 논의가 단기간 내 실질적 진전을 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북한도 종전선언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내놓긴 했지만 이중기준과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를 전제 조건으로 제시하며 적극적이지 않다.
정부는 설리번 보좌관의 언급과 관련, 한·미 간 종전선언에 관해 진지하고 심도 있는 협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 양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 북한과의 외교와 대화를 우선시한다는 입장이며, 이를 위해 긴밀한 협의를 이어왔다”며 “한·미 양국은 앞으로도 긴밀한 공조하에 종전선언에 대해 진지하고 심도 있는 협의를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7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과 회담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한 러시아의 적극적 역할을 당부하고, 종전선언에 대한 지지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문 대통령도 29일 바티칸에서 방북 의지를 밝혀온 교황에게 종전선언 구상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김유진 기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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