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발 사주' 손준성 영장 기각, 수사역량 의심받는 공수처
[경향신문]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의 구속영장이 26일 기각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1호 구속영장’의 기각이다. 서울중앙지법은 “피의자에 대한 출석요구 상황 등 수사 진행 경과 및 피의자에게 정당한 방어권 행사 범위를 넘어 증거인멸이나 도망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면,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방어권을 침해당했다는 손 검사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고발 사주 의혹 수사는 당분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영장 기각은 공수처가 사실상 자초했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지난해 4월 부하 직원에게 여권 인사 고발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도록 지시하고,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혐의를 잡고 수사해왔다. 손 검사가 출석 요구에 계속 불응하자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체포영장이 기각되자 구속영장 청구로 직행했다. 구속영장 발부 요건이 체포영장 발부 요건보다 엄격한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수사방식이다. 게다가 영장 청구 사실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전날에야 피의자에게 통보했다. 공수처는 손 검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일정’을 언급하며 출석을 종용했는데, 이 또한 적절했다고 보기 어렵다.
공수처는 이번에 두 가지 문제점을 노출했다. 첫째는 기관의 수사역량에 대한 의문이다. 고발 사주 의혹 관련자들을 입건한 뒤 40여일이 지났지만, 제보자 조성은씨가 제출한 텔레그램 대화 내용과 통화 녹음 파일 외에 추가 물증은 확보하지 못했다. 여기에다 손 검사 영장 기각까지 보태지며 수사능력을 의심받는 처지로 몰렸다. 둘째는 기관의 설립목표와 관련된다. 공수처는 홈페이지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를 슬로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영장 청구·기각 과정에서 드러난 공수처의 실상은 구호와 거리가 멀다.
공수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조직의 현주소를 철저히 재점검해야 한다. 그래야만 고발 사주 의혹 수사를 다시 제 궤도에 올리고,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규명할 수 있다. 손 검사와 김웅 의원 등 의혹 관련자들도 영장 기각을 ‘면죄부’로 간주해선 곤란하다. 법률가이자 공직자답게 당당히 공수처 조사에 응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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