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데이터, 밀키트처럼 간편하게
아내가 급한 일이 생겼다.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밀키트를 샀다. 표준화된 요리법과 규격화된 재료로 사용설명까지 잘 제공되어 있어 수월하게 저녁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만약 밀키트가 없었다면? 코로나19 장기화로 외출을 꺼리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간편식 판매가 인기를 얻고 있다. 간편식이란 냉동식품, 즉석밥, 레토르트, 도시락 등 간편하게 먹도록 음식재료를 제조·가공·포장해놓은 식품이다. 간편식이 인기몰이를 하는 데에는 식사 준비 시간과 노력을 덜어주는 간편함, 외식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경제성, 특별한 메뉴를 레스토랑이 아닌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다양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 간편식은 누가 만들어도 평균 이상의 맛을 내도록 최적화된 제품이라는 점에서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런 이유로 기업들도 간편식 시장에 앞다퉈 뛰어들면서 판을 키우고 있다.
그렇다면 데이터 홍수 시대를 맞아 데이터도 간편식처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5G의 발달, 플랫폼 개발의 증가, 그리고 메타버스를 통한 3차원 가상세계 등에 관심이 급증하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꼽히는 공간정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아직 미흡한 모양이다.
사물의 위치정보와 속성정보를 결합한 공간정보는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융·복합 기술들과 결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내비게이션과 내 주변 맛집 정보를 생각해보면, 일상에 친숙한 모든 것이 공간정보에 다 녹아 있다.
하지만 공간정보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공간정보의 품질과 활용성에 제약이 많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공간정보가 다른 정보와 결합해 시너지를 발휘해야 함에도 가장 선행되어야 할 데이터 표준화와 품질 관리에 대한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부처별로 생산되는 관련 공간정보의 데이터 형식이 제각각이고 융합되지 못해서 신산업 창출에 활용되지 못하고 각 부처의 데이터창고에 쌓여서 잠자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또한 공간정보를 활용해 창업하려는 민간업계에서는 공간정보의 품질과 활용성에 대해서도 많은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서울 마포구 아현동 가스 폭발사고와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사고를 연이어 겪으면서 1995년 높은 정확도의 지도 제작을 위한 국가지리정보체계(NGIS)를 수립했다. 사고 이후 가스관·송유관에 대한 정확한 위치정보가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뒤늦은 반성이었다. 하지만 각 기관이 개별적으로 GIS를 구축함으로써 기관간 자료를 공유하고 상호운용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를 토대로 공간정보시스템을 구축하다 보니 서로 연계되지 못하거나 기관별로 중복 구축되는 문제도 생겼다. 또한 타기관의 데이터 활용을 위해 데이터를 재가공하는데 시간·인력·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게 됐다. 이에 정부가 NGIS 사업에 표준화를 시행하려고 노력하여 국제표준 도입, 국가 공간정보 사업에 표준 적용 규정 마련 등 공간정보 표준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표준 인증이 규제로 인식되면서 인증체계 마련에 실패하였고 따라서 국가 공간정보 사업에 대한 표준 적용 성과를 제대로 감독할 수 없게 되었다. 확인하지 않는데 누가 지킬까? 또한 표준에 대한 정보 부족, 표준 인프라 추진체계 미흡, 전문 인력 부재, 예산 확보 등도 해결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공간정보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정부도 코로나 극복을 위한 대전환 프로젝트로 '한국판 뉴딜'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공공데이터 14만여개 개방, 데이터 바우처 8400개의 기업 제공, AI 학습 데이터 1300종 구축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수치화된 데이터 개방 목표치가 실제 산업현장에서 현실화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신뢰성 있는 데이터 개방이 우선되지 않고는 데이터 산업 육성과 생태계 조성은 요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공공데이터가 적재적소에 활용될 수 있는 형태로 지속가능하게 공급되려면 데이터 관리체계를 일원화하고 데이터 표준화와 품질 관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제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지금까지 정책이 공공데이터 개방에 그쳤다면 이제는 공공데이터의 생산 단계부터 데이터의 개방·품질·활용을 관리해나가는 공공데이터 융·복합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데이터 생산 단계부터 표준을 적용하고 품질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국토교통부와 LX한국국토정보공사가 공간정보표준 개발 및 지원 활동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최근에는 디지털트윈의 상호운용성 확보와 시너지 창출을 위해 건물·교통·지하시설물 등의 데이터 표준을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신뢰성 있는 공간정보 표준화와 품질 관리가 전제되어야 간편식처럼 편리한 공간정보 활용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는 자국의 데이터 경제를 강화하기 위해 글로벌 빅데이터 기업 육성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데이터 산업이 승자독식 속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각국 정부가 위기감을 갖고 발 빠르게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와 공공기관도 데이터 기반 혁신 성장 정책이 결실을 보려면 데이터 친화적 정책과 생태계 조성에 나서야 한다. 특히 LX공사가 정부와 함께 산업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신뢰성 있는 데이터 표준화를 위해 노력해주길 바란다. 그리하여 간편식과 같이 쉽고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표준화되고 품질 좋은 공간정보 데이터가 하루빨리 우리에게 제공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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