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 전 가을운동회와 씨름판

2021. 10. 2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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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높고 파란 하늘 아래 유치원생·직장인 운동회 열려 단오엔 우승상품 황소 내건 씨름대회 대성황 이뤄 일본, 우리민족 단결 막으려 전통놀이 금지하기도 청백대결·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대대적 보급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속 전래놀이들이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옛날 우리 선조들은 무엇을 하며 놀았을까. 파란 가을하늘이 펼쳐지는 가을이 되면 거의 모든 학교에서 가을 운동회를 했었고, 단오날이 되면 씨름을 즐겼다. 100년 전으로 돌아가 한번 흥겹게 놀아보자.

가을 운동회는 유치원에서도 했었다. 1921년 10월 19일자 매일신보에 '유치원 운동회'란 제목의 기사가 보인다. "공주 청년 수양회에서는 공주 사립 영명학교 부속 유치원에 대하여 운동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시일은 오는 22일 토요일이며 천진난만(天眞爛漫)한 10세 미만의 남녀 아동 운동은 참으로 기관(奇觀)이 되리라고 그곳 인사는 예측 고대 중이다."

직장인 운동회도 있었다. 1921년 10월 13일자 매일신보 기사다. "전주 전매지국의 운동회는 지난 9일 그곳 다가공원에서 거행하였는데, 약 50명씩으로써 한 반을 조직한 직공단 9반은 대오 당당하게 다가공원에 입장하여 동 공원의 광장에서 9시에 '제1회 직공장훈위안회(職工匠勳慰安會)' 의식을 거행하고 폐식 후, 운동회로 옮겨 남녀 직공 약 500명이 자못 성황 중에 수십 회의 경기를 행한 후 동 오후 5시경에 폐회하였는데, 앞으로 동 지국에서는 직공 위안의 목적으로써 매년 춘추(春秋) 2기에 운동회를 개최할 예정이라더라."

이런 가을 운동회는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 동경, 중국 간도 등 해외에서도 열렸다. '동경 유학생의 추기(秋期) 대 운동회 개최 준비 중'이라는 1920년 10월 29일자 매일신보 기사다. "동경에 있는 조선 유학생 700명은 오는 30일 아침 9시부터 코마바(駒場)농과대학 운동장을 빌려 가지고 추기 대운동회를 개최하기 위하여 준비 중이라더라."

당시 일제는 우리 민족을 뭉치게 하는 다양한 전통 놀이문화를 말살했다. 줄다리기, 차전놀이, 고싸움 등은 우리 민족의 단결심을 키워줄 수 있어 못 하게 했고, 전통놀이 궁술도 금지했다. 대신 일본 놀이문화가 대대적으로 보급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운동회에서의 청군, 백군이다.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 청군 백군으로 나눠 이어 달리기를 하거나 박 터뜨리기 같은 놀이를 했다. 청백의 대결은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청색)과 이시다 미쓰나리의 서군(백색)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을 그대로 운동회에 가져다 썼다.

사실 '오징어 게임'에서 했던 첫 번째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1920년대 갑자기 조선반도에 등장한 일본 놀이였다.원래 이름이 '다루마상가 고론다'(달마가 넘어졌습니다)라는 일본 놀이였다.

시민들은 학교나 단체의 운동회 말고도 씨름 구경을 즐겨 했었다. 문헌에 따르면 씨름은 상무(尙武)정신을 기르고 신체를 단련하기 위하여 시작한 경기 운동이다. 한자로 각력(角力)이라 쓴다. 중국의 사기(史記) 이사전(李斯傳)과 한서(漢書) 무제본기(武帝本紀)에서 씨름 기록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씨름은 매년 단오날이 되면 항상 큰 행사로 거행되었다. 1932년 6월 1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주최와 동아일보사 후원으로 '제5회 전조선 씨름대회'를 매일 밤 8시 30분부터 종로청년회관 운동실에서 열기로 되었는데, 참가 신청은 오는 6월 6일까지이고, 추첨은 다음 날 오후 8시 30분에 심판부에서 거행하기로 되었다. 참가금은 매인(每人; 1인당) 20전이요, 신청 시에 납부하기를 바란다."

1921년 4월 13일자 매일신보에 게재된 '토성각희대회(土城脚戱大會)'라는 제목의 기사다. "경의선 역전에 거주 인사들은, 토성의 발전을 기하기 위하여 호상(互相) 상의한 결과, 4월 16, 17일 양일에 역전 광장에서 각희(脚戱; 씨름)대회를 개최한다는데, 서면 벽란도 자동차부에서는 자동차 2대를 무료로 기부하여, 개성 예기(藝妓) 5명을 불러 일반의 흥미를 증가케 하며, 이에 대하여 그곳에서는 다수의 기부금이 있다 하며, 각희 우승 1등자에게 황우(黃牛) 1필, 그 외 등급에 의하여 상품을 준다는데 당일은 대성황을 이루리라더라."

역시 씨름의 상품 1등으론 황소가 대세였던가 보다. 1920년 6월 14일자 조선일보의 '단오에 각희(脚戱)'란 기사에는 "우등 상품되는 소 한 마리와 광목 한 필은 송당면에 있는 김재덕(金載德)이가 점득(占得; 차지하여 얻음)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또한 1921년 6월 14일자 매일신보의 '의주의 각희회(脚戱會; 씨름대회)'라는 기사를 보면 "회중(會衆; 많이 모인 사람들) 약 3000명에 달한 중, 멀리 강계 지방으로부터 온 사람도 있고, 상품으로는 소 2마리를 주로 하여, 각종의 물품을 상여(賞與; 상으로 줌)하였더라"는 글을 읽을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있는 가운데 뉴욕타임스(NYT)는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 흥행 뒤엔 국가적 경제 불안이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오징어 게임은 불평등과 사라지는 기회에 대한 깊은 감정을 활용해 전세계 관객을 확보한 최신 한국 문화 수출품"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상대 빈곤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 2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를 보면 2018~2019년 기준 우리의 상대빈곤율은 16.7%로, 조사 대상 37개 회원국 중 4위였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참담한 자화상이다.

공자는 "불환과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 불환빈이환불안(不患貧而患不安)"이라 했다. 적음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근심하며,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고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한다는 뜻이다. 황소 한 마리 등 상품을 걸어놓고 파란 가을하늘 아래에서 씨름경기, 운동회를 하면서 잠시동안이라도 근심과 시름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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