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눈에 밟히는 문대통령..노태우 조문은 없이 '절제된 애도'

김상훈 기자,조소영 기자 2021. 10. 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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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직선제 후 현직 대통령의 장례식 불참 첫 사례..MB·박근혜는 DJ·盧 조문
광주 5·18단체 및 진보진영 반발 감안한 듯..靑 "대통령 일정상 물리적으로 어렵다"
27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 왼쪽엔 문재인 대통령의 근조화환이 오른쪽에는 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의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2021.10.27/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서울=뉴스1) 김상훈 기자,조소영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에 직접 조문을 가지 않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제진압 책임 등 역사적 과오에 따른 국민적 정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국민통합 측면을 염두에 두고 '국가장(國家葬)' 추진과 추모 메시지 등으로 제한적인 수준에서 애도를 표했다는 관측이다.

현직 대통령이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문 대통령의 경우가 처음이다.

앞서 2015년 11월 서거해 국가장으로 치러진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식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일정 수행차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었지만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았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빈소가 마련된 김해 봉하마을을 직접 방문할 계획을 세웠지만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반발 분위기에 따른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해 서울 경복궁에서 거행된 영결식에 참석했다.

같은 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는 공식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여의도 국회를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직접 방문해 조문했다.

청와대가 문 대통령이 조문을 가지 않는 것과 관련해 표면적으로 밝힌 이유는 문 대통령의 '일정'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4시 청와대 본관에서 '아세안+3화상 정상회의', 8시에 '동아시아 화상 정상회의'(EAS) 등의 일정을 소화한다. 28일부터는 7박9일간 유럽 순방이 예정돼 있다.

대신 이날 오후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 방정균 시민사회수석 등이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유 실장은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의 일정을 전하면서 문 대통령의 직접 조문이 "현재로서는 물리적으로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신 참모회의 논의 등을 통해 국가장을 추진하도록 하고 조화와 애도 메시지를 내는 선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표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오른쪽)씨가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도니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에서 유족인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왼쪽)과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과 인사하고 있다. 2021.10.27/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문 대통령은 추모 메시지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강제 진압과 12·12 군사쿠데타 등 역사적 과오가 적지 않다"면서도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북방정책 추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 성과도 있었다"고 공(功)도 인정했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이같이 '절제된 애도'를 표한 이면에는 국민정서를 무시하지 못한 측면이 컸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참모들도 국가장 여부를 논의하면서 시민단체에서 나온 성명서들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방송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가장 여부에 대해 법적인 문제, 절차적 문제와 함께 "국민 수용성 문제를 기준으로 살펴보겠다"며 국민정서 수렴을 중요 기준 중 하나로 꼽은 바 있다.

실제 이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가장이 결정되자 광주 5·18 단체들은 "무고한 시민을 죽인 학살주범을 국가 차원에서 애도할 수 있느냐. 노씨를 국가장으로 하면 추후 전두환도 국가장 예우를 하지 않겠느냐"고 반발했다.

이용섭 광주시장과 김용집 광주시의회 의장도 성명에서 "광주에 주어진 역사적 책무를 다하고 오월 영령과 광주시민의 뜻을 받들어 국기의 조기 게양과 분향소 설치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뉴스1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육성으로 사과를 한 번이라도 하셨으면 (달랐겠지만) 본인 의사가 어떤 것인지 확인 안 되지 않나"라며 "그랬으면 광주에서도 불편해하는 분들이 훨씬 줄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는 이날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버지께서 5·18에 평소 갖고 계셨던 미안한, 사과하는, 또 역사를 책임지는 마음을 중간중간 많이 피력했는데 직접적으로 말씀으로 표현하지 못하신 게 아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다음달 초 유럽 순방에서도 돌아온 뒤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찾을지도 관심이다. 청와대가 밝힌 대로 현재 일정상 문 대통령의 조문은 불가능하다면 순방 이후 참배는 가능하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현재 유가족들은 고인의 생전 뜻을 받들어 경기 파주시 통일동산에 모시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참배나 이런 것에 대해선 지금 예단해 말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awar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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