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있어 우리는 존재한다

김유태 2021. 10. 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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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두 번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 출간
김초엽 작가의 단편집 '방금 떠나온 세계'가 출간됐다. 2019년작 첫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20만부 판매고를 올린 최정상 작가의 신작이다. 이번 책은 출간과 동시에 알라딘 1위, 예스24 7위, 교보문고 8위(27일 종합 베스트셀러 기준)에 올랐다.

우리가 지구에 닻을 내린 주인이 아니라 대우주의 영속적인 표류자라는 사실이 공기처럼 흐르는 7편의 공상과학(SF) 단편에 담겼다.

소설 '인지 공간'이 눈에 띈다. 인류의 공동 지식이 영원히 보관되는 상상 공간이 소설에 등장한다. 세계의 이치, 신화와 구조는 저 공간에서 후대에 전승된다. 인류 공동의 지식이 워낙 방대하고 압도적이다 보니 개인이 가진 기억쯤은 시시하고 남루해 금세 잊힌다. '이브'로 불리는 인물은 인지 공간의 한계점을 간파한다. 공간 한 귀퉁이에서 쇠락해가는 공동 기억을 발견한 것. 한 가지 예로, 인류에게는 '세 번째 달'이 존재했지만 공동 기억이 지워지면서 누구도 세 번째 달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인간 뇌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지 공간이라는 설정이 흥미로운 문장과 치밀한 논리로 전개되는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것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혹은 '비슷한 우리가 경험하는 서로 다른 기억이 우리 자신을 규정한다'는 메시지를 소설은 응축한다.

다른 단편 '숨그림자'는 소통의 불가능성과 이를 극복하려는 수고를 그렸다. 극지방 얼음 아래서 잠들어 있던 '조안'은 수백 년이 흘러 발성기관이 퇴화한 미래 인류 '단희'와 조우한다. 조안은 미래인들에게 '원형 인류'로 불린다. 조안과 소통하려는 단희는 호흡(숨)의 입자로 상대 언어의 의미를 간파하는 미래 인류다. 통역기를 사이에 둔 둘의 대화는 경이롭다.

두 소설은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김 작가는 책의 말미에서 "우리는 광막한 우주 속을 영원토록 홀로 떠돈다. 짧은 접촉의 순간들을 그려내는 일이 내게는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작가의 말'에 남겼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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