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공격 앵무새·세균에 탈모 겪는 새..이래도 야생동물카페 가시겠습니까?

김기범 기자 2021. 10. 2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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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물도 못 마신 새들, 귀에 감염된 상처가 있는 왈라비, 세균이나 곰팡이로 인해 탈모를 겪고 있는 카피바라, 사람을 공격해 피가 날 정도로 무는 앵무새.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27일 3시 서울시청 인근 상연재에서 연 ‘서울 내 야생동물 전시시설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에서는 서울 시내 야생동물카페, 실내 체험동물원 등의 열악한 환경과 동물복지는 물론 관람객의 안전조차 뒷전인 운영 실태에 대한 증언이 쏟아졌다. 이 보고회는 어웨어 활동가들이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 후원으로 시민들과 함께 지난 3월부터 이달까지 진행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녹색서울시민위원회는 25년째 이어지고 있는 환경 분야 민관 거버넌스 기구다.

미어캣이 관람객의 가방을 뒤지는 모습. 어웨어 제공.

이번에 조사대상이 된 서울의 야생동물 전시시설은 야생동물카페, 실내 체험동물원 등 대체로 소규모의 시설 19곳이다. 이들 19곳 중 16곳은 미등록 야생동물 전시시설이었고, 3곳은 정부에 등록된 민간 동물원이었다. 이들 시설이 동물복지 측면에서 매우 열악하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음에도 아직까지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실태조사는 이뤄진 적이 없다.

조사대상 전시시설 19곳 중 18곳은 사육공간과 관람객 동선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으면서 관람객 안전과 위생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육공간에 관람객 출입이 가능하거나 동물이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게 하는 등 동물과 관람객이 한 공간에 존재하는 형태도 다수였다. 관람객이 식음료를 섭취하는 공간과 동물 사육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경우도 15곳 확인됐다.

동물의 분변을 관람객이나 다른 동물이 밟거나 털이나 발에 분변이 묻은 동물을 관람객이 만질 수 있도록 하고, 몸에 올라가게 하는 등 관람객이 동물의 분변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모습도 다수 관찰됐다. 모두 인수공통전염병과 동물의 공격 등으로 인해 관람객의 안전과 위생이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들이다.

실제 앵무새 먹이 체험을 하는 시설에서는 관람객을 무는 경우도 다수 확인됐다. 어웨어에 따르면 한 시설에서는 실제 시민 조사단원이 중형 앵무에게 피가 날 정도로 물리는 상황도 발생했다. 피부가 약한 어린아이들이 물린다면 더 큰 상처를 입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동물의 배설물 처리를 쉽게 하기 위해 상시적인 급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심각하게 동물복지를 훼손하고 있는 경우와 물을 제공하더라도 배설물이나 이물질로 오염된 경우도 확인됐다. 이들 시설의 동물들은 생존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물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하면서 평생 동안 만성적인 갈증으로 인한 고통을 겪는 경우가 다수였다.

19곳 중 11개 업체에서는 질병이나 부상이 의심되는 동물도 발견됐다. 귀에 감염된 상처가 있는 왈라비나 세균이나 곰팡이로 인해 탈모를 겪고 있는 카피바라도 확인됐다. 어웨어는 이들 질병과 부상이 의심되는 동물은 복수의 수의사로부터 자문을 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동물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만지기, 먹이주기 체험을 하는 곳도 8곳 확인됐다. 대부분의 시설에서는 전시동물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나타나는 정형행동이나 무기력증을 보이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정형행동은 미어캣, 프레리독, 라쿤, 여우, 코아티 등 다양한 종의 동물에서 나타났다.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왔다갔다 하거나, 벽을 긁거나, 같은 자리에서 반복적으로 뛰어오르는 행동이 흔하게 관찰되었다. 프레리독과 미어캣 등 굴을 파는 습성이 있는 동물은 콘크리트 바닥이나 유리벽 틈새를 지속적으로 파는 행동이 빈번하게 관찰됐다. 흔히 동물의 자폐증이라고도 부르는 정형행동은 동물이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특정한 목적 없이 같은 경로를 걸어다니거나 자해를 하는 등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원숭이에게 관람객이 먹이를 주는 모습. 어웨어 제공.

모두 7개 시설에서 생태적으로 연관이 없는 종을 같은 공간에서 사육하는 경우도 확인됐다.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과 미어캣, 라쿤, 왈라비, 사향고양이 등과 같은 야생동물을 합사하여 사육하는 경우가 관찰되었다. 예를 들어 개와 여우, 미어캣 등을 합사하거나 고양이와 왈라비, 사향고양이를 같은 우리에서 키우거나 개와 라쿤을 합사하는 등이었다. 새끼 고양이를 좁은 파충류 사육장에 넣어놓고 전시하는 등의 부적절한 전시 행태도 확인됐다.

미어캣 배설물이 바닥에 방치돼 있는 모습. 어웨어 제공.

조사 결과 대부분의 시설이 동물의 특성을 고려한 충분한 사육 면적을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체 수에 비해 매우 좁은 시설들도 있어 동물끼리 서로 충돌하고, 싸움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확인됐다. 날개깃을 잘라 날 수 없는 새를 관람객이 있는 공간에 풀어놓는 경우 바닥에 떨어져 걸어 다니는 모습도 관찰됐다. 어웨어는 이런 경우 관람객의 부주의로 새를 밟는 등의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상적인 행동을 하기에 지나치게 좁은 라쿤 사육장이나 2단짜리 케이지에 고양이를 가둬놓고 기르는 사례도 있었다.

탈모 증상을 보이고 있는 프레리독. 어웨어 제공.

또 대부분 시설이 동물에게 청각적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정도 크기의 음악을 틀어놓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닥재의 경우 모든 시설이 실내였기 때문에 자연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대부분 콘크리트에 방수 페인트를 칠한 구조였다.

동물이 사람의 시선을 피해 휴식할 수 있는 은신처는 전무했다. 몸을 숨길 공간이 없는 것은 동물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다. 실제 사방으로 트인 사육장에서 코아티가 같은 곳을 반복해서 왔다갔다 하는 정형행동을 하는 것이 목격됐다.

은신처가 없는 사육장에서 정형행동을 보이는 코아티. 어웨어 제공.

시민조사단으로 참여한 방상우씨는 이날 보고회에서 “평가 기준으로 삼은 내용 가운데 괜찮은 시설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모두 문제가 많았다”며 “바닥재가 대부분 콘크리트인 것은 관리자 편의에만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시설이 체험교육을 표방하고 있었는데 이런 공간에서 진정한 교육이 가능할지 의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조사를 주도한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이번 조사 대상시설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내 야생동물 전시시설들은 동물복지 평가가 어려울 정도로 낙제점을 받을 곳이 다수”라며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동물원 외 시설에서 야생동물 전시를 금지하는 내용의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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