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업연구소인정제, 새로운 40년을 향해
미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예측하기 어렵고 불안하다. 코로나19는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경제 구조를 변화시켰다. 이로 인한 충격은 더딘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우리 기업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어렵다고 연구개발(R&D) 투자를 줄이면 10년 뒤, 20년 뒤 생존 가능성은 사라질 것이다. 확실한 먹거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기업의 생존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기술 불모지였다. 값싼 노동력에 기반한 가내수공업이 주력산업이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흐른 지금은 자동차·철강·선박 등 전통 제조업뿐만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5세대(5G) 이동통신 등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밸류체인 중심국가로 성장했다. 이 놀라운 성장에는 여러 성공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기술 개발에 전념한 기업의 노력과 이를 뒷받침한 정부 정책 덕일 것이다.
사견으로는 기업부설연구소 인정제도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기업이 연구원을 채용하고 시설을 확보해서 R&D 준비를 했다고 신고하면 정부는 기업연구소로 인정해 R&D 투자에 대한 조세지원, 병역특례, 연구개발사업을 통해 전폭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업으로 하여금 R&D에 나서게 하는 유인책으로 톡톡히 한몫했다.
기업은 새로운 기술 확보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막상 R&D 투자에는 망설이게 된다. R&D 특성상 성공을 100%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기업은 여유가 생기면 제대로 R&D를 하겠다며 투자 시기를 자꾸 늦추려 한다. 그러나 매일 대출이자·환율·유가에 노심초사하는 중소기업에 여유는 영원히 오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그나마 정부가 기업부설연구소 인정제도를 통해 리스크를 일부 보완해 주기에 작은 기업도 과감하게 도전에 나서는 것이다.
필자의 기업 또한 지난 2000년 기업부설연구소를 인정받으면서 매년 10% 안팎의 R&D비를 투자해서 기술 개발에 주력한 결과 해외에만 의존하던 기술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든든한 기술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정밀냉간단조 기술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최고 경쟁력을 인정받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정부의 연구소 지원정책 도움이 컸다.
기업부설연구소 인정제도가 시행 40주년을 맞았다. 1981년 53개이던 기업연구소는 현재 4만4000여개로 830배 이상 늘어났다. 국가 전체 R&D 투자에서 기업이 약 80%를 차지할 정도로 비약 성장했다. 1981년 최초로 기업부설연구소를 인정받은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등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성장했다. 인정제도 출범 당시 한 곳도 없던 중소기업 연구소는 4만2000여개로 늘어났다. 어디 내놔도 손색없게 번듯하게 성장했다. 40년 동안 기업부설연구소 인정제도가 우리 기업의 R&D 성장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이제 우리 기업의 R&D는 새로운 변화에 직면했다. 산업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면서 다시 출발선에 서는 기업이 늘고 있다. 엔진 계통을 만들던 기업이 수소 센서를 개발하고, 제약회사가 소프트웨어(SW)를 연구하는 일이 벌어진다. 가 보지 않을 길을 찾기 위한 깊이 있는 R&D가 필요하고, 리스크도 그만큼 더 커졌다. 이에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업부설연구소 인정제도를 통한 R&D 지원 강화를 요청한다. 또한 시대 변화와 기업 성장에 맞춰 제도 정비도 필요한 시기가 됐다. 40년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R&D 환경에 알맞은 제도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기업은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기술융합, 디지털전환(Digital Transformation) 등 새로운 방식의 혁신을 고민하고 있다. 기업부설연구소 인정제도가 이러한 요구를 뒷받침하는 제도로서 다시 한번 역할을 해 주기 바란다. 기업의 미래를 뒷받침하는 혁신적인 대표 제도인 기업부설연구소 인정제도의 새로운 40년을 기대한다.
김민응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전국연구소장협의회 회장(대림엠티아이 대표) mineung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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