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직장도 자녀 교육도 힘겨운..출구 없는 한·중 청춘들

송광호 2021. 10. 2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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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MZ세대의 불안 그린 연구서 '문턱의 청년들' 출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아파트 전세에 들어가는 게 요즘 제 나이대 사람들의 꿈인데, 아무도 집을 사는 건 꿈꾸지 않고, 그냥 어떻게든 전세대출 85%까지라도 당겨서 그럼 15%의 내 돈으로 들어가보자가 사실 꿈인 건데…."

30대 초반인 재이 씨의 말이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재이 씨는 서울의 한 명문 대학에 다니다가 어머니와의 불화로 집을 나갔다. 그때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월셋집, 셰어하우스를 전전했다. "부표처럼" 저렴한 집을 찾아 떠돌아다녔지만, 월세는 계속 올랐다. 그는 집값이 싼 제주도로 갔고 6년 만에 돈을 벌어 근거지인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지인들과 함께 사는 전략을 택했다.

전세금의 90%를 대출받을 수 있는 청년 대상 대출상품을 찾고 나머지 10%를 자력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총 5억 원의 전세금 예산을 잡았다. 하지만 매주 치솟는 집값에 꿈꿔왔던 지역에서 한 구역씩 밀려나면서 결국 서울 관악구 남현동의 한 빌라에 간신히 터를 잡을 수 있었다.

재이 씨는 "이 집이 조금만 역에 가까웠다면 우리가 이 집을 보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 빌라 [연합뉴스 자료사진]

최근 출간된 '문턱의 청년들'(책과함께)은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직장과 거주, 자녀 교육 등 삶의 현장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한국과 중국 청년들의 힘겨운 삶을 다룬 연구서다. '한중 청년들의 일상 문화와 생애 기획: 마주침의 현장을 찾아서'란 제목으로 3년 동안 수행한 공동연구가 기반이 됐다.

한중 청년들의 삶의 서사에서 주로 등장하는 교육, 취업과 노동, 창업, 주거와 지역, 연애와 결혼 등을 주제로 정하고, 각 주제를 심도 있게 파고들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조문영 연세대 교수와 양승훈 경남대 교수를 비롯한 13명의 국내외 연구자가 집필자로 나섰다.

책에 따르면 한중의 MZ세대는 주거, 직장, 교육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의 젊은 청년 중 상당수는 비정규직으로 살아간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중 10명 가운데 4명꼴로 비정규직이다. 배달일을 하는 플랫폼 노동자 승엽 씨도 비정규직이다. 섭씨 40℃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음식을 날라야 먹고 살 수 있었다.

"교차로 신호 대기가 걸리면 죽음이다. 온몸은 땀범벅인데 그늘 하나 없고 버스가 토해내는 뜨거운 매연을 몇 분 동안 마시면 숨이 막힌다. 헬멧 안으로 뜨거운 수증기가 들어오고, 마스크를 썼으면 내 뜨거운 입김까지 섞인다."

플랫폼 노동자의 현실과 개선 요구 [연합뉴스 자료사진]

플랫폼 노동자뿐 아니다. 지방 청년들이 느끼는 소외감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많이 뽑겠다는 명목으로 대졸 초임을 깎는 바람에 '88만원 세대'가 더 가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대졸'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졸업생을 의미할 뿐이다.

서울 소재 대학 학생들이 이렇게 정규직 시험에 도전하고 있을 때, 지방 학생들 상당수는 중소 제조업체에서 하청노동자의 삶을 이어간다. 이들은 비정규직을 면하기 위해 수도권을 향해 떠나지만, "대다수의 노동이 비정규직으로 재편되어"있는 상황에서 좋은 직장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의 사정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일은 힘겹지만, 보수는 넉넉지 않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태다. 상하이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외곽지역의 평범한 70㎡ 크기의 아파트와 상하이 번호판이 달린 자동차를 마련하는 데는 한화로 적어도 7억~8억 원이 필요하다. 이는 대졸 취업한 남성의 연봉(1천800만 원 정도)으로 한 푼도 쓰지 않고 40년 이상을 모아야 하는 금액이다.

베이징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특히 학군 지역에 살려면 아무리 낡은 아파트라도 평당 8천만 원을 내야 한다. 베이징에서 하이뎬구, 시청구 등 선호 학군지에 있는 25평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20억 원 가까운 자금이 필요하다.

베이징의 컨설팅회사에서 근무하는 20대 후반 장민 씨는 "베이징이라는 도시는 젊은 인재들을 유입시켜 몇 년간 값싼 노동력을 소모하게 한 다음 그들이 결혼해서 정착할 때쯤에는 외부로 밀어내고 더 젊은 노동력을 충원해서 착취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한중 청년들의 삶이 불안정한 이유에 대해 조문영 교수는 "한국의 제도적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서울·지방 양극화, 분단체제, 중국의 국가사회주의와 정치검열, 뿌리 깊은 도농이원구조와 양안 관계 같은 역사적·제도적 차이들이 글로벌 정치경제의 불안정성, 첨단기술의 발전과 노동 유연화, 초국적 교류와 배타적 민족주의 동시 성장이라는 공통적 흐름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들은 한국의 '88만원 세대' 'n포세대' '욜로', 중국의 '개미족'(학력은 높지만, 취업난으로 인하여 빈곤한 삶을 사는 청년층), '팡누'(집의 노예), '캥거루족'(부모에게 의탁하며 사는 청년층) 등 지난 20년간 등장한 유행어는 모두 일을 통한 경제적 독립, 결혼과 출산을 통한 사회적 재생산 등 청년 세대가 수행하리라 기대됐던 규범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거나 의문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420쪽. 2만원.

책 이미지 [책과함께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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