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등록문화재 1호는? 6·25 탈북민이 미군에 건넨 태극기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북한에서는 남쪽으로 탈출하려는 피란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미군 함정에 승선해 있던 조지 휘트먼 해군 소위 등은 흥남항에서 피란민이 탄 배를 발견해 구조했다. 피란민은 목숨을 구해줘 고맙다며 휘트먼 소위에게 품 속에 고이 간직했던 태극기를 건넸다. 이 태극기는 36년이 지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1987년 8월 휘트먼 소위와 아들 존 휘트먼 미군 육군 중령이 주한 미군기지가 있는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장에게 기증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상흔과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이 태극기가 경기도 등록문화재 제 1호가 됐다. 경기도는 경기도문화재위원회 등록문화재 분과위원회를 열고 동두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를 포함해 11건의 등록문화재 등재를 의결했다고 27일 밝혔다. 경기도 등록문화재는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근대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한다.
경기도는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는 당시 긴박했던 역사적 비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 태극기는 면 재질로 가로와 세로 각각 95cm 정사각형 모양이다. 2002년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이 개관하면서 1층 로비에 전시하고 있다. 동두천시는 경기도에 문화재 등록을 신청하면서 “태극기를 박물관의 교육 자료와 홍보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처음 지정된 경기도 등록문화재에는 파주 갈곡리 성당, 오산 유엔군 초전 기념비와 옛 동판·한국노무단(KSC) 안내판, 일제 강점기 문화재 실측 및 수리도면 일괄, 안산 기아 경3륜 트럭 T600, 부천 한미재단 소사 4-H 훈련농장 사일로, 수원 방화수류정 자개상, 파주의 미군 클럽 라스트 찬스, 파주 말레이시아교, 안산 동주염전 소금운반용 궤도차, 안산 목제 솜틀기도 포함됐다.
제2호인 파주 갈곡리 성당은 지역민과 미군의 협조로 1954년 건립된 건물이다. 문화재위원회는 6·25 전쟁 이후 피폐한 상태였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양식을 보여주는 한편 성당 주변이 구한말 이후 형성된 신앙 마을 공동체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 초기 교회사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또 제3호 ‘오산 유엔군초전기념비와 옛 동판·한국노무단(KSC) 안내판’은 죽미령 전투 장소에 건립된 기념비다. 이곳은 6·25 전쟁 초기 북한군과 유엔군이 최초로 전투를 벌이며 수많은 전사자가 생겼던 장소이다. 기념비와 함께 주한미군 전투 지원을 맡았던 한국노무단이 기념비를 보수한 것을 기록한 안내판이 있어 전쟁이 남긴 상흔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8건의 등록문화재도 일제강점기, 6·25 전쟁, 1960~1970년대 산업현장 등의 역사와 시대상을 담고 있어 높게 평가받았다.
‘일제 강점기 문화재 실측 및 수리도면 일괄’은 1915~1932년 제작된 문화재 보수 관련 근대건축 도면 94점이다. 광화문, 불국사, 경복궁, 흥인지문, 수원화성, 경주 석빙고 등 대한민국의 중요 문화재를 수리하거나 실측하면서 작성한 도면이다. 일제강점기 이루어진 문화재 수리의 내용과 방법 등을 알 수 있어 등록 가치를 인정받았다.
‘안산 기아 경3륜 트럭 T600′은 1960~1970년대 국내 경제 발전과 함께 운송 수단으로 주목받았던 모델로 한국 자동차 산업 및 경제발전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자료이다. 초창기 자동차 산업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중교통사와 더불어 일상 생활사를 엿볼 수 있으며, 현재 보존 상태도 우수하다.
‘부천 한미재단 소사 4-H훈련농장 사일로’는 젖소, 돼지, 닭의 사료를 저장한 시설로 벽면에 한미재단의 표식이 있어 농장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1953년 8월 발족해 전쟁 후 한국의 재건과 농업기술 근대화에 이바지한 한미재단이 부천 소사리에 4-H 훈련농장을 설립했다. 한미재단이 1964년부터 1979년 해체 때까지 지속적으로 활동했던 증거물이다.
일제강점기 제작된 ‘수원 방화수류정 자개상’은 희귀하게 수원 화성의 용연, 방화수류정, 화홍문을 소재로 정교한 조각과 회화적인 화면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특히 상판의 회화적 문양이 정교하고, 자개상의 네 측면과 다리에도 드물게 섬세한 문양을 넣었다. 이러한 점에서 일제강점기 자개 공예문화 일부를 살펴볼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미군 클럽으로 쓰였던 ‘파주 라스트 찬스’는 건물 정면에 브이(V) 모양 기둥, 입면의 수평 띠, 임진강변 조약돌을 이용한 아르누보 패턴의 모자이크 장식, 바닥의 인조석 물 갈기 등 전쟁 직후 건립된 이질적 외관을 보존해 미군 주둔에 따라 형성된 지역적 특징을 알 수 있는 건축물이다. 조용필이 무명 시절 노래한 곳이라는 얘기도 있다.
‘파주 말레이시아교’는 1960년대 말레이시아 원조를 통해 설립된 다리로, 국제적인 협력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개통식 사진에서 나타나듯이 지역민들 관심과 생활 밀접성 등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산 동주염전 소금운반용 궤도차’는 1960~1980년대 경기도 일대 제염산업을 보여주는 실물 자료다. 서해안 일대 염전(소래, 군자, 동주)에서 육지나 바닷가로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사용된 궤도차다. 경기도 해안가의 전통 제염산업의 특징을 보여주는 희소성 있는 산업유산이다. ‘안산 목제솜틀기’는 현재까지 대부분 전해지고 있는 자동식 솜틀기가 아닌 발로 디뎌서 돌리는 방식이다.
이희완 경기도 문화유산과장은 “도내 근대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마련된 등록문화재 제도의 시행 첫 성과로, 등록된 11건 모두 경기도의 정체성과 지역성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미 있는 문화유산”이라며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근대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호해 높은 개발압력 속에서 사라져가는 근대문화자원들의 가치를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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