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관측소', 서울기상관측소에 다녀오다
세차만 하면 비가 온다. 이쪽은 비, 저쪽 하늘은 맑음, 도깨비 같은 날씨다. 기상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터에 마침 서울기상관측소와 국립기상박물관에 가볼 기회가 생겼으니 전문가에게 물어보자.
2017년에 세계기상기구(WMO)로부터 ‘100년 관측소’로 인정을 받은 서울기상관측소는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한참을 올라가다가 지나치고 결국 시민대학 입구로 올라가 찾을 수 있었다. 숨은 맛집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예약 관람을 해야 하는 국립기상박물관의 하루 최대 관람 인원은 32명. 당국의 방역 상황이 바뀌면 인원이 늘어나겠지만 아쉽게도 현재로써는 그게 최대 인원이다.
고지대에 위치한 국립기상박물관은 서울기상관측소와 같은 건물을 쓰고 있다. 100년 관측소로 인정받은 서울기상관측소의 옛 건물을 살려 박물관을 지은 탓이다. 입구에는 과거에 사용했던 목재들도 보존하고 있고 군데군데 드러난 벽돌들과 서까래들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서울기상관측소장님의 설명으로 기상 관측과 서울기상관측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100년 관측소는 무엇일까? 말 그대로 100년 넘게 관측을 이어온 관측소가 대상이 되는데 비활동 기간이 10년 미만이어야 하고 환경 정보를 보존해야 하며 지속적인 자료 품질의 관리와 관측 자료가 공개되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전 세계에 291개 밖에 없는데 우리나라에는 서울과 부산에 각각 하나씩 있어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3개 다음으로 2위란다. 가히 기상 분야의 유네스코 문화재라 할 만하다.
기상관측 업무에 대해 들었다. 기상관측은 지상관측과 계절관측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눈다. 지상관측은 설치된 장비를 이용해 기온과 기압, 풍향과 풍량, 강수량과 적설량 등을 확인하는 업무다. 자동화된 측정장비(AWS)를 통해 자료를 저장하는 종합관제장비(ASOS)가 있지만 결빙이나 적설 측정 등 관측관이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측정한다. 참고로 올해 결빙은 지난 10월 17일에 관측되었다. 서울에 아무리 첫눈이 왔다 하더라도 기상관측소에서 측정이 되지 않으면 첫눈이 아니라 하니 이것도 재미있다.
지상관측에 비해 벚나무나 은행나무, 단풍나무 등의 관측목을 관측하는 것은 물론 제비와 나비, 잠자리며 매미 뻐꾸기 등을 관측해야 하는 계절관측은 낭만적이다. 지구 온난화 탓인지 해마다 개화 시기는 빨라지고 단풍은 늦어진다. 한강의 결빙도 늦어지고 있다 하니 기후변화가 심각한가 보다.
그렇다면 개화와 단풍이 드는 것은 어떻게 판단할까? 개화는 한 그루 나무에서 세 송이 이상이 활짝 핀 것을 개화 시점으로 보고 단풍은 전체 나무의 20% 이상이 물들었을 때를 기준으로 한단다. 이걸 모두 관측관의 눈으로 판단한다니 상당히 낭만적이다. 아울러 서울기상관측소의 단풍나무는 벌써 수령이 126년이 되었다는데 완전히 물들면 장관이라니 그 때쯤 다시 와볼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든다.
이어서 작년 10월 30일에 개관한 박물관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수빈 해설사의 안내로 전시실을 둘러봤는데 삼국시대부터 날씨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조선시대는 실로 기상관측의 시대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전국에 설치된 측우기부터 동궁에 있던 천문관측 시설의 면면이며 국보로 지정된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국보 329호)와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국보 330호)까지 작지만 알찬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측우기의 경우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970년대에 다시 돌려받았다는 역사적 사연이 있는 물건이다. 보존 상태가 좋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기예보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날씨 정보가 활용되는 분야가 다양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박물관을 방문한 시간에는 마침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발사가 예정된 날이었고 실시간으로 해당 지역 상공의 구름과 날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맑은 하늘이었지만 누리호 발사는 아쉽게도 절반의 성공으로 남았다. 기상관측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싶었던 순간.
1층으로 내려와 지진 관련 특별 전시회를 하고 있는 전시실을 둘러봤다. 우리나라는 지진에 비교적 안전한 나라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조금은 바꿔줄 수 있는 전시였다. 과거에 사용했던 지진계와 현재의 지진경보 현황, 지진 발생 시 빨라진 속보까지 국민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노력이 눈물겹다. 이런 노력 덕분에 과거에 26초까지 걸렸던 속보가 지금은 5~6초 만에 완료된다 하니 그 사이에 목숨을 구할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지진 속보뿐 아니라 내진설계도 중요하다. 박물관의 내진설계 덕택에 지난 경주 지진에도 무사한 문화재들의 영상이 흥미로웠다.
국립기상박물관은 개관 1주년 기념으로 현악2중주단의 연주와 미디어 파사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개관일인 10월 30일 저녁 7시부터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개관 1주년 행사일에 비가 오지 않을까요?” “다행히 아직까지는 비 소식이 없습니다.” 기상청 직원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대답해줬다. 푸른 하늘처럼 맑은 미소였다.
국립기상박물관 : https://science.kma.go.kr/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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