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떡 같던 오징어 게임판도 찰떡으로 만든 '스우파' 댄서의 선택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1. 10. 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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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우파'에 대한 열광, 경쟁 속에서도 빛난 댄서들의 선택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Mnet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종영했다. 최종 우승은 홀리뱅 크루. 2위는 훅 크루에게 돌아갔다. Mnet 서바이벌 오디션으로서 오랜만에 마지막 회까지 집중하게 한 프로그램이었지만, 그건 누가 우승을 할 것인가가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들의 멋진 무대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픈 마음이 컸다. 그 무대에서는 멋진 춤이 있고, 춤을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가 있고, 치열하지만 그 경쟁마저 무화시키는 애티튜드와 그 어떤 강연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인사이트 가득한 명언들이 쏟아졌으니 말이다. 최근 2년 넘게 고개를 숙였던 Mnet을 화제의 중심에 놓게 해준 <스트릿 우먼 파이터>. 하지만 그 공은 온전히 댄서들에 있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도 그 시작은 여타의 Mnet 오디션 서바이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등장부터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이기려는 크루들의 노골적인 욕망들의 부딪침을 보기 불편할 정도로 각을 세웠다. 미션 자체가 그랬다. 첫 번째 미션이 '약자 지목 배틀'이었다. 걸 그룹 출신이라는 이유로 원트의 이채연은 다른 크루들이 물어뜯는 먹잇감으로 연출되었다. 같은 팀에서 활동하다 갈라져 골이 생긴 홀리뱅의 허니제이와 코카앤버터 리헤이의 대결을 세웠고, 라치카 가비와 훅 아이키의 대결은 환불원정대의 안무를 두고 이들이 벌였던 대결을 끌어들여 각을 세웠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정복과 굴욕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면서 제작진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일종의 '오징어 게임'이라는 걸 강조했다. 이미 <언프리티 랩스타>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을 통해 보여주곤 했던 자극적인 경쟁구도를 내세웠고, 판정이 나는 순간에 여지없이 인터뷰 목소리로 들어간 양자에게서 자신들이 반드시 이긴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보기 불편한 지점까지 끌고 올라가는 대결구도는 Mnet이 과거 <슈퍼스타K> 시즌3에서 '악마의 편집'이라고까지 불리게 됐던 그 자극점을 재연해 보여줬다.

하지만 이 '오징어 게임' 판을 명승부의 무대로 바꾼 건 다름 아닌 댄서들이었다. 허니제이와 리헤이의 살벌하기까지 했던 댄스 배틀은, 승부가 끝난 후 허니제이가 본인이 패배했으면서도 양팔을 벌려 리헤이를 안아주는 모습으로 한편의 드라마를 썼다. 그 순간 서로 자신들이 훨씬 낫다고 주장하고,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하겠다고 한 이들의 욕망은 절실함으로 바뀌었고, 승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상대에 대한 예우라는 걸 보여줬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 무대 위에서 바지를 벗기까지 했던 가비는 프로그램 시작점에서는 최고의 빌런이 될 것처럼 보였지만 갈수록 그 승부욕이 하나의 캐릭터가 되었고, 유튜브를 통해 가비의 다른 모습들을 발견한 시청자들은 승부의 세계에서 이기고픈 욕망을 끝까지 드러내지만, 그 바깥에서는 상대방을 리스펙트하는 그의 솔직함에 매료됐다.

제작진이 첫 회에서부터 프라우드먼의 모니카나 립제이를 다른 크루들의 '선생님' 격이라고 내세운 후, 마치 사제 간의 대결처럼 무대를 몰아간 부분도 전형적인 Mnet 서바이벌 오디션의 자극적인 선택 중 하나였다. 승부에서는 위아래도 없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댄서들 특히 모니카 같은 선배들이 오히려 나이를 뛰어넘어 후배들을 예우하는 모습으로 명승부를 이끌어냈다. 오히려 승부에서 나이와 서열 따지는 기성세대의 치졸한 면모들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제작진들이 던진 미션들 중에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것들도 존재했다. 이를 테면 '메인 댄서 선발전'은 대놓고 이 댄서들이 가수들 뒤에 서서 잘 드러나지 않던 그 존재감을 대결의 화력으로 활용했고, 메가크루 미션에서는 이른바 '연예인 지인 찬스'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맨 오브 우먼' 미션도 자칫 그 중심에 다시 남성을 세울 수도 있는 문제의 소지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 때마다 댄서들은 제작진이 내놓은 오징어 게임을 명승부로 되돌려 놓는 선택들을 보여줬다. '메인 댄서 선발전'에서는 선발 과정까지 치열했지만 함께 할 때는 척척 맞아 돌아가는 합을 보여줬고, 메가크루 미션에서의 '연예인 지인 찬스'에 대해서는 모니카가 "자존심도 없냐"는 일갈로 상황을 반전시켰다. 또 '맨 오브 우먼' 미션에서 댄서들은 남녀의 성을 뒤바꿔 놓거나, 성을 무화시켜버리는 의상을 입고, 박재범 같은 연예인을 데려와서도 그저 크루의 한 부분처럼 활용하는 방식으로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잘 모르겠고 우리가 제일 잘했고 제일 멋있었어. 그럼 된 거야!" 파이널 무대에서 아쉽게 3등에 그친 라치카의 가비는 그렇게 외쳤다. 최종 우승자에서 멀어졌지만 그들은 이미 우승자였다. 최종 우승자가 된 홀리뱅의 허니제이는 우승소감으로 한국의 댄서들 전부를 상찬했다. "대한민국 댄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며 "이미 멋있기 때문에 자부심 가져도 된다"고 한 것. 2등에 그친 훅의 아이키는 "스우파 댄서들 XX 멋있다!"고 모든 댄서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들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의 성취가 자신들이 아닌 한국의 댄서 전체의 성취라고 강변하고 있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열풍을 불러온 것은 어찌 보면 그 살벌한 생존경쟁의 무대는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과 같았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드라마를 써낸 댄서들이 있어서다. 이 과정이 감동적이었던 건 우리 모두 어쩌면 비슷한 저마다의 오징어 게임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고, 그 속에서 그 현실을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승부에 뛰어들고 욕망을 드러내고 그것을 실현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또 그렇게 승패가 갈린 후 그러한 경쟁의 판 자체를 무화시키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세상은 생존경쟁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고 그래서 생존과 동시에 이기고픈 욕망이 만들어지지만, 그럼에도 다 함께 이기는 경쟁을 향해 나간 댄서들이 있어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빛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모두 우승자였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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