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 2~3장 분량 '추천사'의 힘.. 정재승이 쓰니 한달새 7쇄 찍었다

나윤석 기자 2021. 10. 2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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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들이 선호하는 필진인 정재승(왼쪽부터)·하지현 교수, 유튜버 김겨울, 소설가 김초엽·정세랑·김금희.

■ 신간 판매 좌지우지… 경제·홍보 효과 분석해보니

‘생각한다는…’·‘뇌과학의…’

정재승 추천사에 판매 ‘날개’

최재천·하지현·정세랑 등

추천사 자체로 완성도 높아

에세이·자기계발서에 큰 영향

원고료 20만~50만원선 책정

지난달 말 나란히 출간된 ‘생각한다는 착각’(웨일북)과 ‘뇌과학의 모든 역사’(심심)는 과학책이라는 것 외에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두 책 모두 대중 인지도와 학문적 영향력을 겸비한 정재승 KAIST 교수가 추천사를 썼다. 정 교수는 이들 책에 대해 “급진적 해석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하다” “‘어마무시하게’ 재밌는 역사책”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매년 100∼200권 의뢰를 받아 이 가운데 10∼20권에 대한 추천사를 쓴다”며 “우주·자연·생명의 경이로움을 드러낸 책, 그리고 과학자·의학자가 지구와 인류의 문제를 해결해온 열정이 담긴 책을 중심으로 고른다”고 말한다. 한 주에 수백 권씩 쏟아지는 책 시장에서 ‘이름’을 걸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추천사. 출판사가 선호하는 분야별 추천사 필진은 누구이고, 원고료는 얼마일까. 실제 홍보 효과는 어떨까. ‘추천사의 세계와 경제학’을 들여다봤다.

◇‘믿고 보는’ A급 필진은?

출판사들에 따르면 과학은 정 교수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심리학은 최인철 서울대 교수와 김경일 아주대 교수, ‘마음 치유’를 키워드로 한 에세이는 하지현 건국대 교수(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A급 필진으로 분류된다. 문학의 경우, 여성주의 서사와 과학소설(SF) 장르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 요즘, 여성 소설가가 추천사 필자로 인기가 높다. 이들의 추천 글은 그 자체로 문학적인 완성도가 높아 편집자들이 선호한다. 박혜진 민음사 한국문학팀장은 “‘홍보’의 목적이 크기 때문에 추천사는 이미 독자를 많이 확보한 작가가 쓰는 게 좋다. 이때, 해당 책과 필자의 결이 너무 달라도 안된다”고 전했다.

자주 눈에 띄는 이름은 소설가 정세랑, 김금희, 김초엽 등이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특히 사랑받고 있는 이 작가들은 팬층이 두껍고 SNS 소통도 활발하다. 추천사가 책 속에 머물지 않고 독자들에게 신뢰받는 ‘픽’으로, 또 실질적인 판매량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다.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자인 정 작가는 SF와 순문학을 병행하기 때문에 추천 책의 범위가 넓다는 게 강점이다. 김금희 작가는 직접 라이브 방송까지 할 정도로 독자와의 소통에 애정을 쏟는다. 지난해 박완서 작가 10주기 때 자신이 서평을 쓴 개정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온라인 독서회를 열기도 했다. 한국 SF의 우아한 계보라 불리는 김초엽 작가의 추천사는 SF 세계로의 안내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인간과 인공지능(AI)의 위태로운 관계를 그린 ‘인간의 피안’이 대표적이다. 인플루언서들도 중요 추천사 필자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북튜버로 유명한 김겨울 작가는 최근 김초엽 작가의 책에 연이어 추천사를 썼다. 새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와 정원영 변호사와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의 리커버판이다. 반대로, 김초엽 작가는 김겨울 작가의 ‘책의 말들’에 추천사를 썼다.

인문·과학 서적이 전문성에 초점이 있다면, 소설이나 에세이는 ‘성향’이 핵심이다. 은행나무출판사의 ‘월든’ 특별판은 남궁인·이슬아 작가가 추천사를 썼다. 이 출판사 관계자는 “남궁 작가가 평소 월든을 좋아했고, 이 작가는 새로움의 측면에서 책과 잘 맞는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프랑스 문단의 ‘미투’를 소설화한 ‘동의’는 페미니즘적 책 읽기를 설파해온 이다혜 씨네 21 기자가 추천사를 썼다.

◇원고지 3장에 30만 원 안팎

200자 원고지 2∼3장 안팎인 추천사 고료는 회사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략 20만∼50만 원. 책 안에 수록되는 ‘해제’는 추천사보다 원고료가 높은데, 간혹 해제가 아닌 추천사 원고료로 100만 원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문·잡지 등 다른 지면 매체의 원고료가 ‘1장당 1만∼3만 원’인 것을 고려하면 추천사 고료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출판사 관계자들은 “책을 읽는 수고까지 감안한 비용”이라며 비싼 원고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홍보 효과가 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정 교수가 ‘강추’한 ‘생각한다는 착각’은 전문 과학서임에도 출간 한 달 만에 7쇄를 찍고 1만2000부가량 팔렸다. 또 지난 8월 출간 후 10만 부 넘게 나간 양희은의 에세이집 ‘그러라 그래’ 역시 모델 김나영, 가수 아이유·이적 등 영향력 있는 연예인들의 추천사 덕을 봤다. 김윤경 김영사 이사는 “학술 연구서와 비교해 에세이나 자기계발서는 추천사에 따라 판매량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며 “SNS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를 섭외하면 출간 이후 북토크 등의 후속 이벤트에 독자를 모으기도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물론 저자와 절친한 지인들은 무료로 추천사를 쓰기도 한다. 편집자의 삶을 담은 ‘읽는 직업’을 쓴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은 “김훈 선생님(소설가)과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교수님 등이 오랜 인연으로 ‘흔쾌히’ 좋은 글을 써주셨다”고 전했다.

추천사는 ‘홍보’뿐 아니라 책의 의미를 명쾌하게 ‘포지셔닝’ 해주기도 한다. 황서현 휴머니스트 주간은 “이란 혁명을 다룬 그래픽 노블 ‘페르세폴리스’의 경우 14년 전 첫 출간 땐 ‘중동’에 초점을 맞춰 마케팅했으나 재작년 펴낸 개정판은 임경선·김하나 작가의 추천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여성의 성장 서사’로 포장했다”고 설명했다.

나윤석·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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