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과 이민자의 과학 [김우재의 플라이룸 (15)]

2021. 10. 2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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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올해 노벨상이 발표됐다. 노벨생리의학상은 통증 감지의 비밀을 발견한 미국의 아뎀 파타푸티언과 데이비드 줄리어스에게 돌아갔다. 올해 노벨과학상 수상자 7명 중 4명은 미국인이다. 노벨과학상의 수상기준이 까다롭고 검증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현재 미국이 노벨과학상을 휩쓸고 있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미국은 20세기 엄청난 연구비를 쏟아부었던 분야에서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를 점유하고 있고, 노벨상은 그 열매 중 하나일 뿐이다.

2021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UCSF)의 데이비드 줄리어스(왼쪽) 교수와 스크립스연구소의 아뎀 파타푸티언 교수/파타푸티언 개인 트위터 캡처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더 있다. 미국 수상자의 상당수가 이민자 출신이라는 점이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두 과학자도 이민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줄리어스는 이민자 3세로 러시아의 반유대인 정책을 피해 도미한 동유럽 이민자의 후손이다. 파타푸티언은 이민자라기보다는 난민에 가깝다. 그는 레바논에서 태어나 전쟁의 포화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나라를 떠나야 했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의 35%는 이민자 출신이다. 미국정책재단의 공식발표에 의하면, 1901년 이후 2021년까지 120년간 배출된 미국인 노벨과학상 수상자 311명 중 35%인 109명이 이민자다.

왜 ‘이민자의 과학’인가

이민자의 나라 미국만 그런 게 아니다. 지난 2000년 이후 배출된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40%가 이민자다. 물론 미국이 과학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해외 인재유치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페이퍼클립 작전을 통해 독일의 과학기술자를 대거 망명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엔리코 페르미 등의 물리학자가 독일 나치와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왔고, 바로 그 망명지에 위대한 과학적 성과를 쌓아 올렸다. 미국은 1960년대 이민법을 정비해 국적 할당제를 폐지했고, 특히 과학기술 인재에 대한 비자를 대거 개방했다. 현재 미국의 노벨과학상 수상자 중에서 이민자를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마 당분간 노벨과학상은 이민자 출신의 미국인이 휩쓸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고위직 관료나 상류층에서 이민자를 발견하긴 어렵다. 하지만 미국의 과학기술계와 첨단기술업계 고위직에서 이민자를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국이 이민자가 세운 나라이긴 하지만,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견고하게 구축된 유리천장이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치, 법률, 경영 등의 분야에 존재하는 유리천장과 비교해보면 분명 과학기술 분야의 유리천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건 과학기술의 특징과 사회적 맥락이라는 두 조건 때문이다.

과학기술 분야의 지식은 보편적이다. 해당 국가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아도 수학공식처럼 과학기술계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언어를 통해 과학기술자는 쉽게 해당 국가에 적응할 수 있다. 이런 지식의 보편성은 경쟁의 공정성으로 나타난다. 인맥, 학맥, 혈연, 지연 등 실력 이외의 요소들이 경쟁에 개입하는 다른 분야에 비해 논문과 특허를 통한 과학기술계의 경쟁은 상대적으로 공정하다. 공정한 게임의 룰이 갖춰진 분야에 이민자가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미국사회의 예체능 분야에 이민자와 소수인종이 몰리는 이유 또한 과학기술계에 이민자가 몰리는 이유와 같다. 경쟁이 상대적으로 공정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지식의 보편성과 이를 통해 나타나는 경쟁의 공정성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이민자 출신이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의 절반에 불과하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가 존재해도 정부가 철학을 가지고 과학기술 분야의 인재영입을 위해 꾸준히 정책적 실천을 하지 못한다면, 과학기술 분야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국가적 이익은 존재할 수 없다. 미국은 반세기가 넘게 우수 과학기술인력의 이민을 추진해왔고, 과학기술계 이민을 통해 혁신을 달성한 대표적 국가가 됐다. 끊임없이 인종차별 논란에 시달리는 미국이지만, 과학기술 분야엔 그런 차별이 없다. 그리고 과학기술 분야의 경쟁력이 미국을 떠받치는 엔진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두뇌 유출에서 두뇌 유치로

얼마 전 퇴임한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물리학 박사다. 그의 16년 취임기간 동안 독일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메르켈의 여러 성과 중 시리아 난민 대거 수용은 가장 획기적인 일이다. 메르켈의 정치적 위기를 불러왔던 그 결정이 향후 독일의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과학기술의 최강국이었고, 두뇌 유출을 통해 미국과학의 전성기를 이끈 국가다. 독일은 이후 고급인력의 이민자들을 꾸준히 받아들였고, 막스플랑크연구회, 프라운호퍼연구회 등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연구문화를 통해 첨단기술경쟁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 지위를 구축했다.

한국은 초기 선진국 과학기술을 경험한 유학파를 통해 과학기술생태계를 구축했고, 이후 독자적인 경로를 통해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한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은 질적 도약을 멈추고 정체돼 있다. 과학기술정책의 후진성과 관료주의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한국 과학기술 생태계의 문제는 중층적이다. 한국정부가 미국이나 독일 그리고 최근의 중국처럼 해외의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확보를 위한 두뇌 유치 경쟁에 소극적인 것도, 한국 과학기술 경쟁력의 정체에 기여하고 있는지 모른다.

언젠가부터 한국 과학기술정책전문가들은 ‘두뇌 유출’이라는 화두를 꺼내들었다. 국내의 우수한 과학기술인력이 미국, 유럽, 일본 등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뇌 유출을 막겠다는 관료주의적 편협한 사고방식 속에서 후진적 정책이 추진됐다. 하지만 두뇌 유출의 원인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우수 과학기술인력은 다른 분야보다 국가의 장벽에서 자유롭다. 따라서 그들은 까다롭게 거주국가를 선택한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은 급여수준, 연구여건, 자녀교육 순으로 나타난다. 평범한 직장인이 직장을 선택하는 기준과 전혀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은 국가와 언어의 장벽없이, 이민자와 소수자가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분야다. 역사는 과학기술 분야의 이민자들이 국가의 경쟁력에 지대한 기여를 해왔다고 말한다. 미국과 중국은 과학기술 분야 두뇌 유치를 위해 국가의 명운을 걸고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인이라면, 젊은 해외 과학기술인력을 유치하려는 노력에 국가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이민정책과 과학기술정책은 찬밥 신세다. 대장동과 고발사주 논란 속에서, 누군가는 미래를 준비했으면 한다. 그가 대통령이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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