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이론상 가능하긴 할까? [장르물 전성시대]
2021. 10. 27. 09:19
[주간경향]
시간여행은 우리나라 TV드라마에서도 수시로 접하는 흔한 설정이다. 너무 남용돼 이제 더 이상 특별할 것도 없는 소재랄까. SF팬 입장에서 이런 경향이 마냥 반갑진 않다. 시간여행 개념 자체가 시나리오 작가들에 의해 편의적으로 착취(?)당하는 인상을 받아서다. 타임머신 같은 가시적인 장치 없이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들어낸 특수효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타임슬립해서만은 아니다. 시간여행은 시간의 본질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의미 그리고 양자의 관계를 새삼 되돌아보게 해주는 독창적인 플롯으로서 사변문학을 살찌우는 모티프지만, 텔레비전과 영화로 넘어오면서 그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예가 많지 않아서다.
시간여행은 우리나라 TV드라마에서도 수시로 접하는 흔한 설정이다. 너무 남용돼 이제 더 이상 특별할 것도 없는 소재랄까. SF팬 입장에서 이런 경향이 마냥 반갑진 않다. 시간여행 개념 자체가 시나리오 작가들에 의해 편의적으로 착취(?)당하는 인상을 받아서다. 타임머신 같은 가시적인 장치 없이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들어낸 특수효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타임슬립해서만은 아니다. 시간여행은 시간의 본질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의미 그리고 양자의 관계를 새삼 되돌아보게 해주는 독창적인 플롯으로서 사변문학을 살찌우는 모티프지만, 텔레비전과 영화로 넘어오면서 그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예가 많지 않아서다.
이런 결과는 시간여행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소재주의에만 매몰돼 뭔가 희한한 이야깃거리 같으니 일단 던져놓는, ‘아니면 말고’ 식의 심보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그럼 이런 반문이 나올 법하다. 시간여행이 과학적으로(적어도 이론적으로) 가능하긴 한가? 한번 살펴보자.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 팽창 효과를 증명했으나 이는 오로지 미래로만 가능한 일방통행 시간여행이었다. 그러나 후배 과학자들은 그가 남긴 방정식에서 웜홀과 과거로의 시간여행 가능성을 엿보았다. 이처럼 놀라운 발견이 과학계에 별 파문을 던지지 않은 건 시간여행이 이론상 가능할 뿐, 현실에선 불가능하다고 보아 더 이상 깊게 파고들지 않아서다. 우리우주의 과거나 이웃한 평행우주로 가겠다고 인공 웜홀을 만들 재간이 없거니와 이미 실재하는 블랙홀(일종의 자연 상태 웜홀)을 출입구로 이용하겠다는 발상 또한 자살행위 같았다.
시간여행 내러티브는 19세기부터 등장한 과학소설의 유서 깊은 하위 장르지만, 그 현실성을 놓고 학계와 (과학소설 독자들이 아닌) 일반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은 계기는 천문학자일 뿐 아니라 사회적 명사인 칼 세이건의 장편소설
〈접촉〉(1985) 덕분이다. 그는 여주인공이 지구에서 베가성(거문고자리 1등성)을 오가는 여행에 논리적 근거를 부여하고자 저명 물리학자 킵 손의 자문을 구했다. 일찍이 손은 시간여행을 허용하는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해(解)를 구해 세간을 놀라게 한 학자였다. 1988년 손은 ‘음의 물질’과 ‘음의 에너지’만 있다면 광속에 가깝게 웜홀을 왕복하는 타임머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음의 물질은 알려진 바 없고 음의 에너지 또한 극소량만 존재하는 터라 당시 학계 반응은 회의적이었으나, 손의 논문은 SF에서나 보던 시간여행에 학술 가치를 부여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웜홀은 양자규모 요동으로 언제 어디서나 생겨난다. 다만 그 상태가 불안정해 찰나에만 존재하니 알아채기 어려울 뿐이다. 웜홀 개념을 처음 널리 알린 이는 수학자 출신 작가 루이스 캐럴이다. 그의 장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1871)에는 옥스퍼드 외곽과 ‘원더랜드’를 잇는 웜홀이 나온다.
스티븐 호킹처럼 시간여행이 ‘역사 보호 가설’에 위배되니 현실성 없다고 배척하는 학자들이 여전히 있으나 다른 한편 점차 시간여행의 실제 가능성을 진지하게 따지는 물리학자들도 늘고 있다. 후자의 학자들은 아서왕 이야기를 재해석한 T. H. 화이트의 환상소설 〈과거와 미래의 왕〉(1958)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인용하며 시간여행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금지되지 않은 것은 의무사항이다.”
고장원 SF 평론가
▶ 최신 뉴스 ▶ 두고 두고 읽는 뉴스
▶ 인기 무료만화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주간경향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윤 대통령 “김건희 특검법은 정치선동”···이재명 대표 “흔쾌히 동의할 만한 내용 아냐”
- [IT 칼럼] AI 캐릭터 챗봇과 두 번째 죽음
- 명태균 검찰 출석···“부끄럽고 민망, 돈은 1원도 받은 적 없다”
- [가깝고도 먼 아세안] (40) 키가 경제다? 베트남에 부는 ‘키 크기’ 열풍
- [김우재의 플라이룸] (55)엔지니어 리더십, 동양사학 리더십
- [요즘 어른의 관계 맺기](24) 첫인상으로 승부하라
- [서중해의 경제망원경](37) 노벨상이 말하지 않은 한국 모델
- [꼬다리] 언론은 계속 ‘질문’을 한다
- [오늘을 생각한다] ‘북의 판’에 휘둘릴 우크라 참전단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48) 공과 사를 둘러싼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