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물며 주술보다 못해서야 [편집실에서]

2021. 10. 2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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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수소 H₂O인가 그거 아니에요?”(홍준표 후보)

“H₂O는 물이고요.”(원희룡 후보)

홍준표 후보가 아주 진땀을 뺐습니다. 지난 10월 14일 열린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에서였죠. 홍 후보가 “포항과 울산을 수소경제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말하자 원 후보가 “수소는 뭐로 만들 거냐”는 질문을 던진 겁니다. 홍 후보는 자신의 SNS에 “대통령이 내각에 지시하면 되지 수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야 하는지는 의문”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정치인들에게는 낯설지 모르지만 증시는 이미 수소로 뜨겁습니다. 토론 일주일 뒤 상장된 수소관련주인 지아이텍은 보합장에서도 ‘따상(공모가 두 배로 시초가를 형성한 뒤 상한가)’을 기록했습니다.

20대 대선에 나선 후보 면면을 살펴보니 공통점이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주자가 된 이재명 경기도지사, 국민의힘 윤석열·홍준표·원희룡 후보는 판검사 혹은 변호사 출신입니다. 그러니 논리적이고, 토론도 잘합니다.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거나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도 잘합니다. 자기방어에도 능숙합니다. 하지만 겸손하거나 합리적이거나 솔직하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국회는 법조인들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법을 만드는 곳이니 법조인이 많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너무 많습니다. 여야 후보경선이 대장동, 고발사주에는 밝으면서도 미래를 준비하는 데는 부족해보이는 것이 이 때문일 겁니다.

16년간 독일을 이끈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물리학자 출신입니다. 퇴임을 앞둔 지금도 그에 대한 지지율은 75%에 달한다고 합니다. “나는 과학자예요. 문제들을 가장 잘 관리할 수 있는 부분들로 쪼개는 것을 좋아해요. 그 과정에 감정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요. 중요한 것은 해법을 찾아내는 거예요.”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협상에 앞서 주변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메르켈 리더십: 합의에 이르는 길〉 중)

물론 과학자라고 모두 정치를 잘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의 이전투구를 지켜볼 때면 ‘과학적 사고’를 가진 리더가 한명쯤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손바닥에 새긴 ‘왕(王)’자나 ‘천공스승’ 같은 얘기가 정치판 이슈가 되지는 않았겠지요. 21세기하고도 20년이 더 지난 지금 과학이 주술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기술로 만든 누리호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더미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지 못한 절반의 성공이라지만, 내년 5월 재도전까지는 해결점을 찾아낼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 정치도 의혹을 퍼뜨리거나 말꼬리 잡는 논쟁보다 합의를 통해 답을 찾는 정치로 바뀔 수는 없을까요.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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