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 열풍] ①글로벌 주제에 한국형 서사..조화가 비결
적절한 분량·빠른 템포도 시청자 기호 적중.."가능성 무궁무진"
[※ 편집자 주 =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으로 대성공을 거두면서 K-팝에 이어 이번에는 한국 드라마가 크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K-드라마의 인기는 '오징어게임'에서 그치지 않고, 많은 작품이 지구촌 시청자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예상을 뛰어넘은 K-드라마의 성공 요인과 제작 현실을 짚어보고 개선점, 지원 방향을 모색하는 기사 4건을 일괄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한국 드라마가 세계 시청자를 홀렸다. '오징어 게임'을 필두로 지구촌에 몰아친 K-드라마 열풍은 '신드롬'이라 부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잇기 위한 콘텐츠 업계의 노력이 한창인 가운데 K-드라마의 인기 비결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세계를 관통하는 만국 공통의 사회 문제에 한국 고유의 문화와 정서를 조화롭게 접목한 점에 주목한다. 양극화와 불평등, 인간 본성 같은 소재를 세계인들에게는 이국적으로 여겨지는 장치에 얹어 흥미롭게 담아냈다는 것이다.
상상 속 히어로가 아닌 평범한 이들을 전면에 내세워 현실성을 높인 것도 주효했다. 여기에 각국의 독특한 문화를 반영한 맞춤형 자막도 몰입감을 더했다는 평가다.
K-드라마 세계 시장서 흥행 '폭발'
K-드라마 열풍의 선두 주자는 두말할 것 없이 넷플릭스의 메가 히트작 '오징어 게임'이다. 전 세계 1억 가구 이상이 시청해 넷플릭스 시리즈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83개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영희 인형 등 굿즈와 초록색 체육복이 불티나게 팔리고, 달고나 만들기, 딱지치기 따라하기도 유행이다. 주연 이정재, 박해수, 정호연 등이 미국 인기 프로그램 '지미 팰런쇼'에 출연한 것 또한 글로벌 대흥행을 실감케 한다.
한국 드라마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세계 순위 10위권에 진입하는 건 예삿일이 됐다. 글로벌 순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을 보면 '오징어 게임'이 한달 넘게 1위를 지키는 동안 '마이 네임', '갯마을 차차차', '연모'도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전통 갓 등 한복 차림 좀비로 신선함을 안긴 '킹덤'과 한국형 크리처물 '스위트 홈', 현빈·손예진 주연 '사랑의 불시착', '빈센조', '이태원 클라쓰'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양극화·불평등…세계적 주제와 '한국적인 것'의 조화
전문가들은 한국 드라마의 성공 비결로 부의 집중과 비인간적 경쟁 등 문제를 들춰내며 현대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파고든 점을 꼽았다.
영화 '기생충'이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성을 꼬집어 세계인의 공감을 얻은 데 이어 한국 드라마의 내용과 메시지가 세계 곳곳의 현실을 적절히 반영했다는 얘기다.
'오징어 게임'은 돈의 압박에 눌려 죽음보다도 못한 삶을, '킹덤'은 배고픔에 시달리는 민초와 특권 양반층의 극단적 대비를, '스위트 홈'은 평범한 사람들이 욕망에 잠식돼 괴물로 변하는 모습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지구촌 곳곳에 존재하는 현실이지만, 간과하거나 무감각해지기 쉬운 이슈들이다.
뉴욕타임스는 '오징어 게임'의 인기를 두고 치솟는 집값, 일자리 부족 등에 느끼는 불안이 세계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냈다고 평가했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한국은 이제 보편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위치가 됐다"며 "식민통치, 기아, 전쟁, 민주화 등을 거쳐 선진국으로 들어서는 100m 달리기 주자"라고 비유했다.
홍 교수는 "드라마 속 빈부격차는 우리가 생생하게 겪고 있는 고통이고 상처인데, 먼저 겪은 선진국은 이미 무뎌졌고 개도국은 비판의 여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슈퍼히어로 아닌 '우리'…한국형 서사의 모티브는 공동체
평범한 주인공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이웃과의 연대로 큰 힘을 발휘하는 'K-서사'도 동서양을 사로잡은 요인으로 꼽힌다.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인간미도 매력이다.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는 최후의 1인만 살아남는 살벌한 서바이벌 게임을 하면서도 줄곧 주변 사람들을 챙긴다. 체력이 약한 노인, 여성으로 구성돼 승산이 없어 보였던 줄다리기 게임에서는 똘똘 뭉쳐 극적으로 승리한다.
'킹덤' 주인공 주지훈은 힘없는 왕세자에서 사람들을 결집하며 백성을 생각하는 군주로 성장하고, '갯마을 차차차'에서 깍쟁이 같던 신민아는 바닷가 마을의 주민들과 한데 어울려 살며 정을 나누게 된다.
이처럼 한국형 서사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공동체다. 영웅이 아닌 '우리'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서구 작품을 보면 파편화된 개인들이 문제 해결을 강요받는데 이들이 택하는 방법은 갑자기 거미에 물려 초능력을 얻는 반면, 한국 드라마는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할 때 기가 막힌 시너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가 제시하는 해결책을 보면서 서양에서는 '왜 우리가 잊고 살았지'라는 충격을, 동양에서는 '우리의 가치가 옳구나' 하는 안도를 느낀다. 서양과 동양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 파급효과도…"K-드라마 가능성 무궁무진"
한국 드라마의 잇단 성공에는 한 작품의 흥행이 다른 작품에도 영향을 미치는 연쇄효과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오징어 게임'을 시청한 이들에게 '비슷한 콘텐츠', '지금 뜨는 콘텐츠', '인기 콘텐츠' 등을 통해 다른 한국 작품을 소개하는 알고리즘 추천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디지털 플랫폼에선 한 작품이 성공하면 꼬리를 물고 연쇄 반응이 일어난다"며 "플랫폼 외부에서도 BTS, '기생충', '미나리' 등이 성공하며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10회 안팎의 분량으로 '몰아보기'가 가능하다는 점도 한국 드라마의 장점이다.
한 시즌에 20회가 넘어가는 외국의 대작보다 시청에 부담이 적을 수밖에 없다.
분량이 짧은 만큼 전개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속도감을 높이는 점도 요즘 콘텐츠 이용자들의 기호에 맞아떨어진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K-서사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계속 새로운 소재에 도전한다면 한국 드라마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본다"며 "다만 성공한 작품을 어설프게 답습하려 한다며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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