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탄소'가 망친 세상 '수소'가 구해줄까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1. 10.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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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제공

태초의 청정함을 간직한 수소가 탄소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깨끗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태양광·풍력의 전기를 이용하면 친환경적인 ‘그린 수소’를 무한정 생산할 수 있고, 그린 수소를 암모니아로 전환시키면 편리하고 안전하게 운송‧저장‧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탈원전 때문에 절망하던 원자력 전문가들도 수소 구원론을 환영하고 있다. 원자로의 열을 이용하는 ‘고온’ 전기분해가 상온에서의 알칼리 전기분해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우주의 수소가 자동차를 달리게 해준다’는 황당한 광고가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수소는 ‘안전한 청정 연료’가 아니다

명백하게 알려진 과학적 사실을 교묘하게 꿰어 맞춘 궤변이 넘쳐난다. 깨끗한 수소가 지천으로 널려있다는 주장이 가장 대표적인 궤변이다. 우주의 75%가 수소인 것은 분명한 과학적 사실이다. 그런데 우주의 수소는 대부분 태양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항성(붙박이별)에 집중되어 있다. 태양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다. 무려 1억 5천만 킬로미터나 된다. 빛의 속도로 8분 30초가 걸리고, 국제선 항공기로는 무려 17년이 걸린다. 표면 온도도 6천도나 된다.

지구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물질인 수소 기체는 모두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버렸다. 지구에 남아있는 수소의 양은 지구의 0.14%에 지나지 않는다. 그마저도 대부분 탄소‧산소‧질소 등의 원소와 화학적으로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다.

수소가 ‘태초의 청정함을 간직한 연료’라는 주장도 황당한 궤변이다. 지구에서 수소는 석탄‧석유‧천연가스처럼 자연에서 채취해서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연료’(1차 에너지)가 아니다. 오히려 수소는 우리가 애써 생산해야만 하는 ‘고급 에너지 전달‧저장 수단’(2차 에너지)이다. 수소의 생산에는 상당한 기술력과 적지 않은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2차 에너지인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동아일보DB

수소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은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부생 수소’가 만들어지는 원유의 정제 과정에서는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상당한 오염도 발생한다. 수소 충전소에서 ‘개질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서 천연가스(메테인)를 고온의 수증기로 열분해하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신경을 써야 하는 형편에서는 천연가스를 직접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환경적일 수 있다.

물의 알칼리 전기분해도 친환경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전기분해 설비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전기분해에 사용하는 알칼리 염(alkaline salt)에 의한 부식과 오염도 해결이 쉽지 않다. 화력발전 대신 태양광‧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한다고 ‘그린 수소’가 넉넉하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고작 하루 평균 2.5시간을 가동할 수 있는 극심한 간헐성‧변동성이 걸림돌이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 장치산업은 하루 24시간 가동하는 것이 원칙이다.

임계온도가 섭씨 영하 240도(절대온도 33K)인 수소는 고압의 기체로 운반‧저장‧활용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단점이다. 고압의 수소 기체를 운반‧저장‧활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오염도 만만치 않다.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의 연료 탱크는 700기압의 초고압을 사용한다. 그런 초고압을 견딜 수 있는 금속 탱크는 실용화가 어려울 정도로 무겁다. 다행히 가벼운 탄소섬유로 충분히 튼튼한 연료탱크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초고압의 연료탱크의 안전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수소 기체의 누출도 걱정해야 한다. 공기보다 훨씬 가벼운 수소는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는 주장은 섣부른 것이다. 강릉 수소 폭발 사고에서 경험했듯이 수소는 공기 중의 산소와 혼합되면 쉽게 폭발한다. 수소가 가벼운 기체라는 사실이 폭발의 위력을 오히려 더욱 강화시켜준다. 수소의 폭발에서는 강력한 쇼크웨이브(충격파)가 발생해서 피해를 증폭시킨다. 누출된 수소가 궁극적으로는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가 버리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지구 환경에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수소의 활용도 만만치 않다

한국에너지공단 제공

수소를 연소시키면 깨끗한 물 이외에는 어떠한 오염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수소를 공기 중의 산소와 연소시키는 경우에는 디젤 엔진에서와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양의 질소 산화물(NOx)가 발생한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노력이 자칫 인체와 환경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오염물질 배출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폭스바겐이 뒤늦게 ‘수소차’를 포기하고, ‘전기차’를 선택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수소를 연소시키는 가스터빈이 상용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질소 산화물의 발생을 억제하는 기술도 필요하고, 가스터빈의 효율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수소나 암모니아를 천연가스와 함께 연소시키는 ‘혼소’ 기술도 온실가스의 ‘넷제로’를 실현시켜줄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악취와 강한 독성의 암모니아가 수소 경제의 핵심이 되기도 어렵다. 고온‧고압에서 수소와 질소를 결합시키는 하버 공정에도 적지 않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암모니아를 연료로 사용하는 일도 화학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암모니아의 연속적인 연소에 필요한 산소 혼합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 암모니아의 연소에서 얻을 수 있는 열량도 천연가스의 3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암모니아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까지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불리해진다. 암모니아의 연소에서 발생하는 질소 산화물의 처리도 부담스럽다.

사실 수소에 대한 뜨거운 열기는 미국의 저술가 제러미 리프킨이 2002년에 내놓은 어설픈 ‘수소 경제’(hydrogen economy)에서 시작된 것이다. 화석연료가 고갈되고 나면 수소가 인류를 먹여 살리게 된다는 것이 리프킨의 화려한 전망이었다. 그러나 기술 혁신의 가능성과 경제적 부담을 충분히 고려한 전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가벼운 마음을 읽어야 하는 공상과학소설에 더 가까운 것이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어떤 기수이나 뚝딱 만들어주는 요술 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진화론을 과학 이론으로 인정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심지어 하느님도 그런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개발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곧바로 ‘우리 기업이 그런 기술을 확보했다’로 둔갑시켜서는 안 된다. 거칠고 위험한 자연에서의 생존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에 대한 더욱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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