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들이 준 외제차, '작업'인 줄 몰랐다..1억 빚에 보험사기 공범 전락

박동해 기자 입력 2021. 10. 27. 06:40 수정 2021. 10. 2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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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뽑아 주고 고의 사고 강요..빌미로 대출 받아 가로채
배달일까지 하며 빚 갚았지만 원금 안줄어..폭행·감시도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처음에는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고 현혹하는 거예요. 한두 달이면 외제차도 뽑을 수 있다고 하고요."

지난달 중순 경기 고양시의 한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안민영씨(20·가명)는 자신이 현재 '도망자' 신세라고 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자동차 보험사기에 가담한 민영씨는 경찰의 수배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민영씨는 자신을 쫓는 이들이 경찰이 아닌 자신에게 보험사기를 종용한 일당이라고 했다.

민영씨가 도망자 신분이 된 사건은 올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로부터 '돈을 잘 버는 형들'을 소개받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외제차를 끌고 나타난 형들은 밥이나 먹자며 민영씨를 데리고 가서 돈 버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도 이런 외제차 끌고 싶지 않냐. 한두 달 이 일 하면 네 돈 안 내고 뽑을 수 있어." 민영씨는 그 말을 믿었다.

결국 형들과 일을 같이 하기로 하자 민영씨 앞으로 고급 차가 한대 나왔다. 민영씨는 한참이 지나서야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작업 친다'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형들은 "이제 네 차야"라며 취득세와 보험료도 몇달간 내줬다. 이때부터 민영씨는 형들이 시키는 '일'을 해야 했다.

그들이 "차를 받았으니 일을 해야 한다"면서 민영씨에게 종용한 일은 받을 차를 가지고 고의 사고를 일으켜 보험금을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몇번 사고를 내서 보험금을 받아오며 차 값을 갚을 수 있고 본인 명의로 차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민영씨는 차를 받게 된 마당에 얼마의 차값은 내야 한다는 생각에 이에 가담하기도 했다. 몇번 사고를 내면 돈을 받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다.

하지만 지인들을 모아 몇차례 고의 사고를 일으켜도 민영씨에게 떨어지는 돈은 없었다. 민영씨에게 일을 시킨 일당들은 보험금과 합의금을 전부 현금으로 뽑아 가져오게 했다. 차량 비용을 갚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차량을 출고하면서 이들은 민영씨에게 공증을 쓰게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차가격보다 더 많은 비용을 갚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반복된 사고로 차가 운영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일당들은 민영씨의 명의로 또 다른 차량을 뽑아주고 다시 보험사기를 치게 했다. 또 민영씨는 이들 일당이 자신의 명의로 여러 대의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이를 이용해 소액결제를 하거나 대포폰으로 판매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일당들은 민영씨가 '더 이상 보험사기를 칠 수 없다'고 하자 차량을 담보로 또다시 대출을 일으켜서 이 돈을 가져갔다. 민영씨는 차량 비용에 대출금, 휴대전화 비용 등으로 1억원이 넘는 빚을 지게 됐다. 일당들을 만나고 빚이 1억원을 넘기기까지 채 6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민영씨의 친구인 김정환씨(20·가명)도 이 일당들과 어울려 놀면서 범죄에 가담하게 됐다. 정환씨는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범죄에 가담할 생각이 없었다"라며 일당들이 자신의 명의를 도용해 보험사기를 치곤 통장으로 들어온 보험금을 가져가게 되면서 이들과 얽히게 됐다고 했다. 정환씨는 이들 일당이 자신의 개인 신상 정보를 물어간 것이 이런 용도로 사용될지는 몰랐다.

이후 일당들은 정환씨에게도 차를 내어주고 똑같은 보험사기를 치게 했다. 역시나 몇번 보험금을 받아오면 돈도 갚고 차도 생긴다고 생각했지만 사고를 일으켜도 계속해 빚은 늘고 이자는 불어나기만 갔다. 민영씨와 정환씨는 일당들이 돈을 제때 가져오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욕설을 했고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일당들은 민영씨와 정환씨에게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며 배달 대행 일을 시키기도 했다. 빨리 대출금을 갚으면 이 굴레를 벗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둘은 쉴세 없이 오토바이를 타며 배달을 했다.

둘이 합쳐 일주일에 400만원 가까운 돈을 번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일당들은 민영씨와 정환씨가 배달 대행을 하며 버는 돈을 자기들 앞의 계좌로 들어오게 해놓았다. 그러곤 민영씨와 정환씨가 원금을 얼마나 갚았는지 물어 오면 "너희가 벌어온 돈은 이자 갚는데도 부족하다"며 오히려 타박을 줬다.

또 일당들은 민영씨와 정환씨에게 지낼 곳을 마련해 준다며 자취방을 잡아주고 수시로 찾아와 감시했다. 일당들에게 묶여 있어야만 했던 민영씨와 정환씨는 결국 보험사기 수배 대상이 됐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간 결국 피해만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둘은 숙소를 탈출해 경찰에 자수를 했다. 자신들이 보험사기의 공범으로 처벌을 받더라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민영씨와 정환씨에게 보험사기를 강요했다고 지목을 받은 일당들은 보험사기를 지시했다는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이들 중 한명은 '그런 식으로 돈을 버는 사례가 있다'고만 것을 알려주기만 했을 뿐 직접적으로 그런 식으로 돈을 벌어오라고 강요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한편, 민영씨와 정환씨의 보험사기 건을 수사한 경찰은 이들에게 보험사기를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일당들에 대해서도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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