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니카 앞에 선 날. 나는 변형됐다.
#212
어떤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일종의 운동이고 체험이며 더 나아가 나를 변형시키는 일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봤던 날이 기억난다. 출장길이었는데 마드리드를 상징하는 프라도 미술관은 일정에 포함돼 있었지만 게르니카를 소장한 작은 미술관 소피아는 빠져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게르니카'라는 격음을 입안에서 몇 번 발음하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상스럽게 마음이 안절부절못했고 밤에도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새벽녘 벌떡 일어나 게르니카를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일행들과 바라하스 공항에서 점심 무렵 비행기를 타기로 했으니 시간이 없었다.
아침 일찍 짐을 챙겨 들고 택시를 불러 타 호텔을 나섰다. 미술관이 9시에 문을 여니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게르니카를 만나고 곧바로 공항으로 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차가 막히는 것이었다. 조금씩 막히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나면서는 아예 꼼짝하지 않았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 커다란 여행가방을 끌고 울퉁불퉁한 중세의 보도블록이 깔린 길을 뛰기 시작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아침 아토차역 인근에서 테러로 의심되는 총격 사건이 벌어져 경찰이 인근 교통을 완전 차단하는 일이 있었다).
감당할 수 없이 숨이 차올랐고, 여행가방은 자꾸만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뛰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소피아 미술관에 도착했다. 나는 입구에서 표를 산 다음 게르니카가 걸려 있다는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게르니카 앞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경비원과 나를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숨이 멎는 것 같아서 가슴을 손으로 문질렀다. 게르니카는 모노톤이었다. 내 머리는 왜 게르니카를 컬러로 기억하고 있었을까. 타닥타닥 석조 건물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리는 어두컴컴한 2층 전시실에는 게르니카와 나, 그리고 무표정한 경비원. 이렇게 세 가지 입장이 정지 화면처럼 서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이렇게 떠들고 다녔다.
"세상 사람은 둘로 나눌수 있어. 게르니카를 본 사람과 못 본 사람."
게르니카를 만난 내 체험이, 그 감동이 어떤 언어로도 대체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날 운동했던 내 심장을, 도파민을 분비했던 뇌를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이 글을 씀으로써 또 안타까워진다.
어쨌든 나는 게르니카로 인해 변형됐다.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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