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정'의 엄마는 50년째 한 자리서 야채를 판다

이상원 기자 2021. 10. 27.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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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 시위 도중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으로 압사한 학생이 있다.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구타당해 죽은 지 불과 한 달 만의 일이다.

김종분씨의 삶이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페이지를 드러낸다고 여긴 김 감독은 그를 찾아갔다.

영화 시작부터 꽤 긴 시간 노점을 중심으로 한 김종분씨의 현재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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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정 열사의 어머니 김종분씨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왕십리 김종분〉이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되었다. 김진열 감독은 "영화에서 그의 현재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했다"라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왕십리 김종분>을 연출한 김진열 감독. 이 영화는 11월11일 개봉한다. ⓒ시사IN 조남진

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 시위 도중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으로 압사한 학생이 있다. 성균관대 재학 중이던 25세 여학생 김귀정이다.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구타당해 죽은 지 불과 한 달 만의 일이다. 학생들의 잇따른 죽음은 정권에 대한 공분을 불렀다.

김귀정의 어머니 김종분씨는 서울 왕십리 행당시장 앞에서 노점을 해왔다. 1939년생인 그가 50년 이상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김진열 감독은 한 인터뷰 기사에서 읽었다. 왕십리는 김 감독의 집과 가까운 곳이었다. 김종분씨의 삶이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페이지를 드러낸다고 여긴 김 감독은 그를 찾아갔다. 때마침 김귀정 열사 30주기를 앞둔 때였다. 추모사업회, 제작사 등과 논의를 거쳐 김종분씨의 삶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게 되었다. 11월11일 개봉 예정인 〈왕십리 김종분〉이다. 영화가 공개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극장은 가득 찼다. 김진열 감독을 만나 영화의 뒷이야기를 더 들었다.

어떻게 만들게 된 영화인가?

다큐멘터리 영화화가 결정되기 전에는 김종분씨의 생애 구술(인터뷰이가 자신의 삶을 말하는 것)을 받으려 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활동한 어머니들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그분들에 대한 영상 작업이 없는 건 아니다.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에서 행사용으로 제작한 게 있는데, 이 영상에는 한 개인의 삶이 아니라 자식을 뒷바라지했던 어머니로서의 모습만 보여 아쉬웠다. 헌신했던 어머니가 아니라 온전한 삶 전체를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삶은 노동사다. 김종분씨를 비롯해 시장에 계신 주변의 또래 상인들도 거의 평생 왕십리에서 생업에 종사하던 분들이다. 도시에서 노동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최초 의도는 그랬다.

생애 구술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전환하게 된 과정은?

시기상 김귀정 열사 30주기가 다가왔다. 제작사와 추모사업회 등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김종분에서 김귀정 쪽으로 영화 중심이 바뀌었다. 김귀정 열사 대학 동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하는 게 첫 기획이었다. 동문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은 좋았다. 그런데 1991년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당시 분위기를 모른다. 김종분이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한다면 상대적으로 마음 편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방향을 도로 바꿨다. 어머니의 삶을 그려 김귀정 열사를 조명하는 것이다. 삶의 훈장, 자부심이었던 딸을 잃은 어머니의 아픔이, 보는 이의 입장에서 와닿을 수 있겠다고 봤다.

처음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 김종분씨 반응은 어땠나?

〈왕십리 김종분〉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다고 했을 때 김종분씨가 ‘이게 이렇게 대단한 일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만드는 짧은 영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성균관대 방송국에서 1991년 겨울쯤 영상을 만든 적이 있다. 김종분씨가 시장에 가고 노점 일을 하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그때처럼 짧은 인터뷰와 촬영 몇 차례로 끝날 줄 알았는데, 우리(촬영팀)가 계속 찾아가니까 ‘왜 계속 오는 거니?’라며 의아해했다. 좀 지나면서는 촬영이 익숙해져 노점에 있는 내게 일도 시키고 그랬다. 영화 중간에 보면 노점에 있는 내가 나온다(웃음).

노점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김종분씨 (오른쪽). ⓒ(주)인디스토리 제공

영화 시작부터 꽤 긴 시간 노점을 중심으로 한 김종분씨의 현재만 나온다. 김귀정 열사 이야기를 뒤로 미룬 까닭은?

김종분의 삶 속에는 김귀정이 있지만, 영화에서는 그의 현재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다. 노점을 할 때가 가장 그분답다고 생각한다. 당당한 본연의 모습이 보였다. 김귀정 사망 당시 몇몇 기사는 그를 ‘노점상의 딸’ ‘도시 빈민’이라고 불렸다. ‘극빈층이 공권력에 죽었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죽음을 이렇게 요약하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고 사실도 아니다. 김종분씨에게 노점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터전이 아니라 교류의 장이다. 친구들과 만나고, 즐거움을 찾는 평생의 일터이다. 30년 전부터 계속 노점을 한다고 빈곤층이 아니다.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돈이 생기면 손주들에게 용돈 주는 게 아니라 친구들과 그날 바로 맛있는 것을 사먹는다(웃음). 주체적이지 않은가?

영화 후반부 김종분씨가 딸의 묘역에서 오열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보통 1년에 한 번 정도 따로 묘역을 보러 간다고 했다. 시장의 한 친구분은 김종분씨가 힘든 일이 있으면 혼자 딸을 보러 간다고 하더라. 촬영하던 때에는 묘역에 가본 지 한참 되었다고 하길래 우리가 “따님 한번 보러 가실래요?” 했다. 흔쾌히 좋다고 하시더라. 혼자 따님 만나시라고 촬영감독이 먼저 가서 삼각대만 세워놓고 사람은 모두 빠졌다.

식구들과 친구의 인터뷰 위주로 전개된다. 활동가나 운동가들은 비중이 적다.

열사의 가족 가운데에는 운동가의 삶을 살아가는 분도 적지 않다. 그렇게 활동하는 부모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이들도 많다. 김종분씨는 본인의 삶, 본연의 삶을 가지고 갔던 것 같다. 노점 일을 하면서 짬짬이 단체 활동에도 참석하는 방식이다. 다른 열사의 부모님들 인터뷰도 했는데 작업 과정에서 빠졌다. 자칫하다가는 너무 전형적인 ‘열사의 어머니’라는 이야기로 흐를 것 같았다. 좋아하지 않는 방식이다. 열사의 어머니라고 무조건 투쟁을 요구하는 건 어떻게 보면 폭력일 수 있다. 딸을 잃었지만 삶을 지키면서 본인의 선 안에서 움직이는, 다양한 삶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전작 〈나쁜 나라〉에서는 세월호 사건을 다뤘다. 무거운 이야기들을 다뤄왔는데, 이런 소재에 주목하는 이유는? 향후 작업 계획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세월호도 내가 먼저 ‘작업을 해야겠다’고 나섰다기보다는 주변 분들이 ‘참사를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제안해왔다. 현장에 있으면서 관계를 맺다 보면 하게 된다. 향후에는 생애 구술 작업에 관심이 있는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고민 중이다. 지난해 돌아가신 여성 비전향 장기수의 기록을 끝내 남기지 못했다. 본인이 ‘기록이 남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며 끝내 거부했다. 당사자가 살아 있을 때 최대한 여성, 약자, 소수자들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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