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가족에 돌아가고픈 애엄마 이야기로 봐주길"

오승훈 2021. 10. 2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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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그림자꽃' 27일 개봉
주인공 김련희씨·이승준 감독 인터뷰
지난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엣나인필름 사무실에서 김련희(사진 왼쪽)씨와 이승준 감독이 다큐영화 <그림자꽃>에 대해 얘기하면서 웃고 있다. 오승훈 기자

“전 딸 하나를 둔 평양의 평범한 주부였어요. 남편은 김책공업대학 부속병원 의사였고, 전 양장점 직원이었죠. 원래 간이 안 좋아 평양에서 치료를 받다 완치가 안 돼 2011년 5월 중국 친척집으로 요양차 두달 일정으로 갔는데, 북한과 달리 중국은 병원비가 너무 비싼 거예요. 북한으로 돌아갈 여비 마련을 위해 중국 식당에서 일하다 탈북 브로커를 만나게 된 거죠. ‘남한에서 잠깐 일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북한 여권을 넘겼는데,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늦었죠.”

북송을 희망하는 최초의 북한이탈주민 김련희(52)씨는, 자신의 삶을 다룬 이승준 감독의 다큐영화 <그림자꽃>(27일 개봉)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 25일, 이 감독과 함께 서울 동작구 사당동 엣나인필름 사무실에서 만난 김씨는 수더분한 주부의 모습이었다.

다큐영화 <그림자꽃>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2011년 9월, 그는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 원치 않게 한국 땅을 밟았다. 입국 직후 이뤄진 국가정보원 조사부터 일관되게 북송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률상 대한민국 국민인데다 북한이탈주민을 북송한 전례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슨 수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에 밀항과 위조 여권을 알아보던 그는 국외 추방을 노리고 자신이 ‘탈북자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간첩 행위를 했다’며 자진 신고를 해 처벌을 받기도 했다. 2015년 7월 <한겨레>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사실들이다. 이 감독은 이 기사를 보고 김씨를 만난 뒤 제작에 착수했다. 그는 세월호를 다룬 다큐 <부재의 기억>으로 지난해 한국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다.

촬영 8개월째인 2016년 3월, 김씨는 베트남대사관에 찾아가 망명 신청을 하기도 했다. “‘북한으로 보내달라’ 했지만 거부당했어요. 대구지검은 이 일과 페이스북 등에 쓴 북한 관련 글들을 문제 삼아 지난해 12월 단 한번의 조사도 없이 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어요. 1월에 열린다는 재판은 지금까지 무기한 연기됐네요. 2018년 5월 여권이 나왔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3년째 출국금지 상태예요.” 정권이 바뀌고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지만, 그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큐영화 <그림자꽃>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는 단 한번도 그에게서 적의를 거두지 않았지만, 그를 지탱해준 것은 호의를 베푼 남녘 사람들이었다. “권오헌 회장님을 비롯해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분들은 정말 남녘에서 만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집 없어 떠돌 때 거처를 마련해주고 곁을 지켜주셨죠. 제가 최근 간암 수술을 했는데 이분들이 절 보살펴주셨죠. ‘이게 한 핏줄이구나’ 느꼈어요.”

이렇듯 고난 속에서도 생은 지속된다. <그림자꽃>은 생이별한 김씨 가족의 고통을 응시하면서도 그들의 일상에 따스한 시선을 보낸다. 공장에서 일을 하고 홀로 밥을 먹던 김씨는, 함께 입국한 북한이탈주민들과 오랜만에 만나 얘길 나누고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평양의 김씨 가족도 다르지 않았다. 이 감독의 지인인 핀란드인 다큐 감독이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아 두차례 촬영한 다큐 속 평양 장면에서, 김씨 가족들은 밥을 먹고 일상을 보내며 김씨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감독은 “북한 사람들이나 탈북자들도 우리와 똑같이 일상을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라며 “그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다는 것,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한 목표였기 때문에 평양 장면은 꼭 넣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엣나인필름 사무실에서 김련희(왼쪽)씨와 이승준 감독이 다큐영화 <그림자꽃>에 대해 얘기하면서 웃고 있다. 오승훈 기자

평양 장면을 거론하며 “남편이 의사였으면 중산층 아니었냐”고 묻자 김씨는 “중산층 아니었다. 남한과 달리 북에서 의사는 그냥 공무원이다”라며 “남편보다 양장점에서 일했던 제 월급이 더 많았다”고 했다.

김씨가 가족에게 돌아가는 길은 없는 걸까. 이 감독이 말했다. “이제 한국 정부가 조금 통 크게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북송하면 북한의 체제 선전에 이용당할 거라고 보는 거 같은데 ‘이용하면 그러라’고 하면 되지 않나요. 김련희씨를 보내면 다른 북한이탈주민들도 보내달라고 할 거라는데 심사를 거쳐 북송을 간절히 원하는 경우, 다시 보내주는 것도 인도주의잖아요.”

인터뷰를 마치며 김씨는 “‘감독이 빨갱이’라는 등 부정적 댓글이 많더라. 그분들께 가족이 북에 억류돼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싶다.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애 엄마의 이야기로 봐달라”고 했다.

글·사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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