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봉하마을 평산마을
임기 말 지지율 기록… 레임덕
빠졌던 이전 대통령과 달라
대통령의 연이은 불행한 말로로
정립되지 못한 전직 대통령문화
미국 경험 타산지석 삼아야
시나브로 20대 대통령선거일이 다가오고 있다. 대선이 임박했다는 건 현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만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남은 임기는 채 200일이 되지 않는다. 여당 대통령후보는 이미 선출됐고, 제1야당 대통령후보는 다음 주 선출된다. 여당 후보가 선출되고 대선 국면에 본격 접어들면 여권의 역학관계는 후보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게 마련인데 이번엔 예외다. 대통령 지지세가 견고해서다.
6공화국 탄생 이후 역대 대통령은 임기 말 예외 없이 레임덕에 빠졌다. 대통령의 당적 유지가 외려 대선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이유로 쫓겨나다시피 당을 떠난 대통령도 있다. 하나같이 권력형 비리, 측근 비리, 가족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탓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자유롭다. 적어도 지금까진 그렇다. 임기 말 40% 안팎의 지지율을 견인하는 원동력은 여기에 기인한다. 김영삼 6%, 김대중 24%, 노무현 12%, 이명박 21%, 박근혜 4% 등 역대 대통령 임기 말 지지율(최저치 기준)과 비교하면 차이가 실감난다.
청와대가 최근 자주 강조하는 말이 ‘말년 없는 정부’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국회의장단 및 상임위원장단을 만나 “우리 정부는 말년이 없을 것 같다. 임기 마지막까지 위기 극복 정부로서 사명을 다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레임덕 대통령이라면 여당 내에서도 딴소리를 했을 텐데 군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 지지도가 당 지지도보다 높으니 당이 대통령에게 이러쿵저러쿵할 처지가 못된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노무현정부 처음과 끝을 같이했다. 좌충우돌 노무현정부 시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체득한 그때의 국정 경험이 없었다면 문재인정부 또한 실제보다 더 많은 실책을 범했을 거다. 노무현은 재임 시에 비해 퇴임 후 외려 인기가 높았던 대통령이다.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서울살이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친환경농업을 실천했고, 한국 정치가 나아갈 미래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했다. 마을사람과 이웃으로 어울렸다. 이러는 사이 봉하마을은 남녀노소 즐겨찾는 모든 이의 사랑방이 됐다. 이때까지 다른 전직 대통령에게선 볼 수 없던 전혀 새로운 모습이었다.
봉하마을 실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봉하마을은 국립현충원과 더불어 정치적 변곡점이 있을 때마다 유력인사들의 순례지가 됐다. 여권은 물론 야권 인사도 찾는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는 지난 9월 이곳을 찾아 ‘2002년 노무현 후보처럼’을 희망했고,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후보는 ‘사람 사는 세상, 그 고귀한 뜻을 이어받겠다’고 대선 신고식을 했다. 유승민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는 바른정당 창당 후인 2017년 2월 봉하마을을 찾아 ‘용감한 개혁으로 정의로운 민주공화국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었다. 비록 잠시나마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는 마당 역할을 봉하마을이 하고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는 내년 5월 경남 양산 평산마을로 내려간다. 전직 대통령의 두 번째 귀향이다. 문 대통령은 2020년 신년회견 때 퇴임 후 계획을 밝힌 적이 있다. “현실 정치와 연관된 일은 일체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2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에 변화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잊히는 게 전직 대통령의 역할은 아닌 듯싶다. 대통령제 전형인 미국의 경우 전직 대통령의 활동이 활발하다 못해 왕성하다. 필요하다면 선거유세도 마다하지 않는다. 현실정치와의 단절을 전직 대통령의 도리로 여기는 우리의 전직 대통령 문화는 억지스럽다.
역대 대통령의 연이은 불행한 말로로 우리 나름의 전직 대통령 문화를 만들지 못했다. 재임 시의 실책과 비리로 대중 앞에 나설 계제가 없었고, 자연스레 국민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런 사례가 고착된 나머지 왜곡된 전직 대통령 문화가 이식됐다. 현대사의 불행이다. 봉하마을이 그랬던 것처럼 평산마을도 모든 이의 사랑방이 됐으면 한다. 봉하마을에서 미완으로 끝난 새로운 전직 대통령 문화의 토대를 정립할 기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고가 전해졌다. 그러나 전 국민적 애도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으로 그가 잘한 것은 아들을 보내 광주에 사죄한 일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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