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76] 청산도 전복장
전복장을 생각하는 마음을 읽었을까. 청산도에 구들장논을 살피러 갔다가 인터뷰도 하고 직접 양식한 전복을 선물로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배에서부터 설렜다. 묵직한 것이 구이와 회로 먹고, 전복장을 할 만큼 넉넉할 것 같았다. 지금처럼 대규모로 양식하기 전에는 구경도 힘든 것이 전복이었다. 큰 수술을 했을 때 몸을 보하라고 주는 귀한 선물이었다. 10여 년 전 대학에 있을 때, 딱 한 번 전복을 선물로 받았다.
조선 시대에 진상할 전복을 채취하기 위해 섬에 ‘채복선’과 ‘포작인’을 배치했다. 포작인 중에는 종묘에 천신하는 큰 전복을 구하기 위해 외딴섬에 들어갔다가 수적을 만나 변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진도에서는 전복을 따다 풍랑을 만나 오키나와로 표류하는 일도 있었다. 제주에서는 포작인들이 중간 관리들의 이중 삼중 수탈을 견디다 못해 섬을 탈출하자 해조류를 채취하던 ‘잠녀’들이 그 몫을 감당했다. 오늘날 물질을 남자보다 여자가 많이 하게 된 사연을 설명할 때 인용되곤 하는 내용이다.
지금은 자연산 전복은 귀하고 먼 섬에서만 볼 수 있다. 대신에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 보길도, 소안도 등에서 전복 양식을 많이 하고 있다. 전복 양식은 3년은 키워야 팔 수 있을 만큼 자란다. 다시마나 미역 등 먹이를 일주일에 두세 번 주어야 한다. 다른 양식에 비해 자본 회전율이 늦고 1년 내내 관리해야 한다. 또 최근에는 폭우와 수온 상승 등 기후 위기로 어려움이 많다.
문헌에는 전복을 ‘복어’라 했다. ‘자산어보’에서 복어는 ‘포’를 만들어 먹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당시에도 복어를 대꼬챙이에 10미씩 꿰어 말린 ‘건복’을 높은 양반들에게 선물했다. 조선 시대 조리서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전복장아찌’나 ‘조선요리법’의 ‘전복초’도 건복을 불려서 조리한 것이다. 전복장처럼 저민 전복에 연한 살코기와 마늘과 파를 각각 다져 넣고 진간장을 부어 뭉근하게 조린 것이다. 오늘날 전복장<사진>도 진간장에 마늘, 다시마, 표고, 고추, 양파, 사과, 대파 등을 넣어 끓여 만든 장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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