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중국과는 ‘오징어 게임’을 만들 수 없는 이유

김태훈 논설위원 2021. 10. 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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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자유 존중 넷플릭스와 한국인의 신명이 만난 작품
전체주의 사회에선 불가능… 中 ‘한한령’은 위장된 축복
오징어게임 장면

중국이 사드를 핑계 삼아 한한령(限韓令)을 발동했을 때만 해도 우리 문화·예술계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14억 중국의 영화·공연·가요 시장이 닫히게 됐다며 발을 굴렀다. 그때부터 4년여가 지난 지금, 오히려 반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한한령은 한류의 도약을 촉진하는 ‘위장된 축복’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때 중국 발아래 엎드려 비위나 맞추고 중국식 규제에 맞춰 작품을 만들었다면 빌보드 정상에 오른 방탄소년단(BTS)도, 아카데미의 주인공이 된 ‘기생충’과 ‘미나리’도, 세계 190나라 안방 극장을 석권한 ‘오징어 게임’도 없었을지 모른다.

문화의 소프트파워론(論)을 주창한 조셉 나이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소프트파워를 “강압이나 거래가 아니라 매력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는 능력”이라고 했다. 우리가 그런 소프트파워 강국 반열에 들어섰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세계인이 입 모아 그렇게 말한다. 나이 교수는 “반면 중국은 매년 100억달러를 퍼붓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중국 같은 전체주의 국가는 ‘국민이 즐기고 싶어 하는 문화’가 아니라 ‘국민이 따라야 하는 문화’를 강요한다. 6·25 때 자국 청년 수만 명이 떼죽음한 장진호 전투를 영화로 만들더니 대규모 관중 동원을 통해 억지 흥행작으로 띄운 게 대표적이다.

오징어게임의 전세계적 열기속에 중국의 수십개의 동영상 사이트에서 오징어게임을 중국어 자막을 붙인 상태로 불법으로 상영하고있다./중국 동영상 사이트

반면 ‘국민이 즐기고 싶어 하는 문화’엔 규제의 칼을 들이댄다. 건전한 기풍을 조성한다며 외모가 여성스러운 남성의 방송 출연조차 금지한다. 이 기준대로면 배우 장국영이 초(楚)나라 항우의 연인 우(虞)미인으로 분장했던 명화 ‘패왕별희’는 제작할 수 없다. 대중문화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팬덤도 단속한다. 어이없게도 이런 후진적 행태를 중국 시장에 진출한 우리 예술인에게까지 강요한다. 중국 당국은 BTS, 엑소, 아이유 같은 한류 스타 팬덤 계정까지 정지시켰다.

국가가 문화·예술을 향해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행태는 전체주의의 본질적 특성이다. 지난 세기 초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발발하자 러시아 아방가르드 화가들은 “민중 편에 서서 자유롭게 사회주의 이상을 표현할 기회”라며 반겼다. 정작 볼셰비키들은 예술의 자유를 용납하지 않았다. 샤갈에겐 “당신 그림이 마르크스 레닌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힐난했고, 말레비치에겐 “대중이 이해할 수 있게 그리라”고 윽박질렀다. 샤갈은 마음대로 그리기 위해 조국을 등졌다. 반면 말레비치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초상화를 그리며 러시아에 남았다. 가끔 맘대로 그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을 때면, 그림 위에 혁명 이전 날짜를 적어 제작 연도를 속이는 것으로 감시를 피했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작품을 만든 적이 없다”고 했다. 창작의 자유를 존중하고, 마음껏 표현하도록 토대를 제공하는 넷플릭스 시스템을 그렇게 말했다. “지원만 하고 간섭은 하지 않을 테니 끼를 발산하라”는 넷플릭스의 자유주의적 접근이 한국인 특유의 신명과 만났다. 중국은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는 나라다. 세계에서 ‘오징어 게임’이 불법인 두 나라가 북한과 중국이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한류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 누구와 손잡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11월엔 또 다른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OTT) 디즈니플러스가 한국에 상륙한다. 한국 작품을 7편 장착했고, 우리 콘텐츠를 세계에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세계적 OTT들이 한국과 손잡으면서 우리 영화인들은 세계 무대에 더 자주, 더 많이 설 기회를 잡고 있다. 이러니 한한령이 한류 세계화를 위한 위장된 축복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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