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간판·범죄 예방.. ○△□, 어디까지 써봤니
국경·문화 초월.. 언어가 된 ○△□
핼러윈 가면, 선거운동에도 활용
멕시코선 독촉장 디자인으로 써
동그라미(Ο) 세모(△) 네모()가 자주 보인다. 라면 포장, 영어학원 간판, 대통령 후보 이름에도 이 도형이 있다. 넷플릭스 흥행작 ‘오징어게임’이 남긴 흔적이다. 드라마가 방영되지도 않은 중국에서 ‘오징어의 승리(鱿鱼的胜利)’라는 짝퉁 예능을 기획할 정도다. 핼러윈데이가 다가오자 Ο나 △, 가 그려진 가면이 불티나게 팔린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만 있으면 온 세상을 담을 수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가을이다.
‘오징어게임’ 속 초대장에는 Ο△가 인쇄돼 있다. 멕시코 북부 멕시칼리의 주민들은 최근 대문 틈에서 그런 봉투를 발견했다. 열어 보니 미납 수도 요금 독촉장. 드라마의 인기에 올라탄 관심 끌기 전략이었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오징어게임의 Ο△는 언어와 국경, 문화를 뛰어넘는다. ‘드라마의 강남스타일’ 같은 빅 점프”라며 “즐거운 놀이인가 살벌한 게임인가가 종이 한 장 차이인 우리 현실을 비추는 풍자”라고 했다.
◇놀이가 된 Ο△
옛날 사람들은 달에서 동그라미(), 숲에서 세모(△), 캄캄한 밤에서 ‘없음(0)’을 발견했다고 한다. 문명은 특히 동그라미에 큰 신세를 지고 있다. 바퀴 발명으로 더 많이 싣고 더 멀리 가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기계의 역사 또한 톱니바퀴에서 출발한다. 네모()는 자연에서 찾아보기 어렵지만 인류가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사용했다. 책도 아파트도 휴대전화도 네모다.
‘오징어게임’은 456명이 456억원을 놓고 경쟁하는 데스게임이다. “감정 이입하기 쉬운 심플함이 인기 비결”이라고 황동혁 감독은 말했다. 마지막 승부인 오징어게임은 Ο△를 그려놓고 살벌한 링처럼 썼다. “Ο△를 명함과 가면에도 적극적으로 심었는데, 단순한 논리를 가져갈 때 커 보이는 효과가 있다”(채경선 미술감독)는 제작진의 의도는 적중했다. Ο△는 강력한 ‘밈(meme·인터넷 놀이처럼 유행하는 이미지)’으로 세력을 키워나갔다.
◇우리가 알던 그것이 아니다
Ο△는 아이가 사물의 형태를 배울 때 처음 만나는 도형들이다. 가위바위보도 그것을 응용한 놀이다. 그런데 ‘오징어게임’에서 Ο△는 우리에게 친숙한 그것이 아니다. 수평적이지 않고 수직적 위계가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감시자들의 가면 가운데 Ο는 일꾼, △는 병정, 는 관리자를 상징한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변(邊)이 많을수록 계급이 높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오징어게임’은 “안 그래도 코로나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놀거리를 선물했다”는 호평과 함께 너무 폭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수진 공연칼럼니스트는 “Ο△도 그렇고 ‘오징어게임’에는 아이들이 관계를 맺을 때 사용하는 놀이가 많다”며 “이젠 그 놀이를 할 때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다. 놀이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며 절망한다”고 지적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넷플릭스 등 OTT는 휴대전화로 24시간 볼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할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진화심리학으로 본 놀이
강남스타일이 히트하니 말춤이 확산됐듯이 Ο△도 이른바 ‘오징어 코인’에 묻어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도 감시자들의 가면이나 “깐부잖아!” 같은 자막을 자주 집어넣는다. 전중환 경희대 교수(진화심리학)는 “놀이가 생존에 중요한 사회성을 길러준다”며 “이번 ‘오징어게임’ 현상은 노는 게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축구나 야구, 농구를 보고 흥분하는 것은 오래전 부족주의의 흔적이다. 힘과 단합이 필요한 스포츠는 부족 간 싸움이나 전쟁에서 구성원에게 필요한 전투 능력을 가늠하거나 기르는 훈련이었다.” ‘오징어게임’에서는 줄다리기와 오징어게임이 그 부류에 속한다. 좋은 드라마에는 즐거움이나 감동을 주는 ‘쾌락 버튼’이 많다. 사람들은 이제 현실에서 Ο△를 주고받으며 그 놀이를 연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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