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정상회담 미끼로 南 홀려 美 압박하는 北… ‘新북풍’이 불어온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1. 10. 2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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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결집 ‘舊북풍’, 2007 정상회담부터 평화 내건 ‘新북풍’ 돼
김정은, ‘통신선 복원’에 흥분한 南 움직여 대북제재 해제 노려
北에 암호화폐로 보상 가능성… 돈 주고 뺨맞는 ‘평화쇼’ 중단을

신(新)북풍이 불어오고 있다. 2000년 이전은 선거를 앞두고 북한이 도발하는 경우 보수 세력이 결집하는 북풍의 시대였다. 미수에 그친 총풍 사건도 그런 사례였다. 야권은 북한의 도발에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2007년 12월 대선부터는 사태가 역전되었다. 물밑에서 여권이 정상회담을 기획하여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신북풍이 불기 시작했다. 정보기관 핫라인을 통하여 다양한 보상을 거론하며 집요하게 거래를 제안했다. 평양 통전부 간부들과 중국 등 제3국 접촉은 다반사였다. 그해 여름부터 시작된 작전(?)은 마침내 10·4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당시 회담을 위하여 평양을 방문했던 실무 요원들은 남측 수뇌부들의 대북 구애가 목불인견이었다고 증언한다.

/그래픽=양인성

북한이 2007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김정일·노무현 평양 회담에 응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우선 진보 정권 연장이 필요했다. 인도적 명분으로 대북 지원에 적극적인 청와대를 유지하는 것은 확실한 스폰서 확보 전술이다. 유엔의 촘촘한 대북 제재가 채택되기 전이라 다양한 명분으로 각종 물자와 자재가 자유롭게 평양에 지원되었다. 첨단 전자 부품과 장비도 대형 포장 박스에 담겨 평양으로 넘어갔다. 군수물자로 전용된 것은 불문가지다. 서울이 평양의 자판기 역할을 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야당이 집권할 경우, 2006년 1차 핵실험 때문에 북한을 향한 비핵화 요구가 더욱 강해질 것을 우려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북한은 후자보다 전자에 관심이 많았다. 어차피 핵무장은 6·25전쟁 이후 50년에 걸쳐 필살기로 추진되는 만큼 남측의 여야 정권 교체에 무관하게 움직였다. 이후 2017년까지 총 6차례의 핵실험이 자신들의 로드맵에 따라 진행되었다.

마지막 이유는 남측의 눈물겨운 구애와 저자세였다. 투표권이 없는 평양이지만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다. 평양은 임기 말 인기가 바닥인 서울 정권과의 정상회담에 소극적이었다. 남측은 초조하였고 무슨 요구이든 수용하겠다는 ‘묻지 마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8개 항목의 현란한 합의문이 도출되었다. 김정일은 노 전 대통령에게 평양에서 하루 더 체류하라고 선심을 썼다. 혼자 결정하지 못한다고 대답하는 노 전 대통령에게 김정일은 최고지도자가 그거 하나 결정하지 못하냐고 핀잔을 주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받은 예우는 “당신들이 그렇게 원해서 왔으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역설이었다. 남측의 정권 교체 후 김정일은 식량 지원 등 이면 합의 대가를 받지 못하자 채권 추심을 군부에 명하였다. 결국 2년 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이어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도쿄올림픽 불참 제재로 북한이 명년 2월 베이징올림픽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관측은 중국의 국력을 무시한 판단이다. 중국이 대북 페널티를 보상하는데 흥행 몰이에 주력하는 IOC가 북한의 참여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남북한 정상이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국제적인 여건은 ‘이상 무(無)’다. 단지 서울·평양 간 내부 거래가 관건이 될 것이다.

현재 평양은 선남후미(先南後美) 전략이다. 김여정이 아닌 김정은이 전면에 나서면서 멈춰 선 남북 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중대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김정은은 4차 정상회담에 몸이 단 문재인 정부에 통신선 복원 카드를 던지며 워싱턴을 압박해 대북 제재를 해제하라는 ‘명’을 ‘하달’한 셈이다. 청와대는 드디어 때가 왔다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김정은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조건 없는 대화’ 정책을 ‘적대 행위를 가리기 위한 허울’로 비난하고 전술적 대책을 마련했다. 일차적으로 한·미가 주적이 아니라며 남측을 움직여서 워싱턴을 압박한다. 꿩 대신 닭이라는 치대신계(雉代身鷄) 전술로 서울을 흔들기 시작했다. 우선 서울에 미끼를 던져서 워싱턴을 압박하도록 ‘스리 쿠션’ 전술을 구사했다. 서훈 안보실장이 신속하게 워싱턴을 방문하여 이벤트성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통일부는 “남의 잔치에 그냥 가서 악수하며 만나는 것보다 사전에 진전이 중요하다. 지금부터 아주 중요한 시간”이라며 정상회담 개최를 기정사실화했다.

향후 한반도 워치의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청와대의 열망인 화상 정상회담을 거쳐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정상회담이 개최될지 여부다. 다음은 한·미 동맹의 균열과 한·중 밀착 여부다. 문 대통령이 높은 점수를 받았던 5월 21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발표문은 사문화되기 시작했다. 우회전 신호를 약속해놓고 청와대는 북측을, 외교부 장관은 베이징을 두둔하고 배려하며 미국의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키는 데 ‘올인’이다. 북한은 “북남 관계 개선은 그 누구의 승인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북 제재 해제를 달성하면 정상회담 테이블에 착석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이다.

복잡한 한반도 국제 정세와 맞물려 베이징올림픽에서 남북 정상회담 성사의 결정적인 변수 중의 하나는 금전적인 보상이다. 종전 선언 등 거창한 국제 정세는 명분이고 확실한 현금이 핵심이다. 액수와 전달 방법 등이 남북 정보 당국 간의 물밑 기싸움에서 결정될 것이다. 유엔 대북 제재를 뚫고 무사히 ‘캐시(cash)’가 평양으로 넘어가는 방도를 찾는 데 머리를 맞댈 것이다. 북한은 사이버전 요원 양성소인 미림대학 등을 운영하는 해킹의 달인인 만큼 비트코인은 매력적인 수단이다. USB로 코드와 프로그램만 넘기면 거래 종료다. 잘사는 형이 못사는 동생 집에 가는데 성의 표시는 해야 한다는 DJ의 논리는 핵실험 전까지는 민족 공조 담론이었다. 하지만 SLBM이 잠수함에서 발사되고 극초음속·순항 미사일, 우라늄 농축 핵무기 등 최첨단 무기가 한반도 상공을 횡횡하는 시점에 현금 주고 뺨 맞는 정상회담 평화 쇼는 이제 중단해야 한다. 국정원장이 과거의 경험으로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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