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은미·정지돈 "소설은 우리를 감각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이기문 기자 2021. 10. 2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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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동인문학상 후보 4인 서로에게 쓰는 편지] [下]

올해로 52주년을 맞은 동인문학상은 독자와 함께하는 한국문학의 축제. 2021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로 윤성희·조해진·최은미·정지돈(등단 연도순)이 뽑혔다. 다음 달 수상작 발표를 앞두고, 상대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두 차례에 걸쳐 네 작품을 소개한다. 올해 한국 문학의 빛나는 성과를 함께 읽어 보시기를. /이기문 기자

◇감각의 향연... 당신은 눈·귀·코로 쓰더군요

최은미 작가에게…

최은미 ‘눈으로 만든 사람’

표지 때문일까요? ‘눈으로 만든 사람’을 처음 읽고 난 뒤 떠오른 이미지는 복도식 아파트였습니다. 높고 무성한 나무로 이루어진 숲이 햇빛의 각도에 따라 외벽에 아름다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낮 시간이면 놀이터에서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아이들 뒤편에는 피로와 상처, 평온함과 설렘이 교차하는 표정의 여자들이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아이들의 작은 가방을 옆에 끼고요.

당신의 눈과 귀는 이들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보내고 동네 상가의 공방에서 취미 활동을 하거나 맞은편 동에 사는 이웃의 거실 식탁에 둘러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듣습니다. 이 여자들의 삶에는 특별한 부도 없고 가난도 없으며 기상천외한 삶의 이력도 없고 대단한 욕망이나 절망, 비극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시선이 깊어지고 침묵이 길어질수록, 모든 삶에는 같은 동시에 다른 풍부함과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세한 생활과 감정의 결 속에서 저와 다르지만 같고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받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런 경험을 소설의 역할이라고 할까요?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설명하기 전에 몸으로 감각하게 되는 것, 그러나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하면 사라져버리는 일상의 주름이 있는 곳.

최은미는 “코로나 백신을 맞고 열이 난 상태에서 하루를 통째로 정지돈의 소설 주인공 정웰링턴을 생각하며 보냈다”고 했다./이태경 기자

당신의 눈과 귀는 또다시 이 여자들을 따라 이동합니다. 그들은 집을 떠나 고속도로를 타고 휴게소를 지나 과거로 회귀합니다. 과거에는 여전히 현재진행 중인 감각들이 떠돌고 그러므로 이것은 오로지 과거라고 할 수 없는 이상한 시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감각 기관이 동원됩니다. 바로 코입니다. 과거는 종종 냄새로, 향으로 현재에 당도합니다. 그래서 유년 시절로 회귀하는 당신의 소설 ‘운내’에서 운내는 그 지역의 이름인 동시에 과거를 복원하는 감각이 됩니다.

당신의 소설을 읽기 위해 필요한 건 아마도 눈과 귀와 코인 듯합니다. 감각을 열고 다가가면 어느 순간 닿게 되는 그런 장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그런 장소에서 뵙길 바라며. ㅡ정지돈 드림

◇사라지지 않는 순간들… 당신의 戀書를 읽었습니다

정지돈 작가에게…

정지돈 ‘모든 것은 영원했다’

일기에 삶의 내역을 정리하곤 했던 한 남자가 있습니다. 어느 밤에 그는 이런 말을 썼지요. ‘마음먹은 대로 말할 수 없다. 무엇을 마음먹은 것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뭔가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거라는 것을요. 그러니 이제 다음은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이 소설은 1927년 하와이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나 1963년 체코의 한 도시에서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한 정웰링턴이라는 실존 인물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재미 한인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미국에서 의사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북한으로 가기 위해 생활의 토대를 버립니다. 중간 경로로 체코행을 택하지만 북한에서도 체코에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게 되지요.

정지돈은 “최은미의 소설을 덮으면 식탁에 앉아 있는 인물들이 그려진다”며 “말할 곳이 없는 사람들의 중얼거림처럼 들렸다”고 했다./오종찬 기자

그를 고립된 망명자이자 이상주의자로 명명하며 그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는 한 소설가가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정웰링턴 못지않게 중요한 인물이지요. ‘나는 완전히 멈출 것이다.’ 정웰링턴은 말하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그의 세계가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가 정지돈에게 포착되었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인물에 대해 오래 생각해온 소설가에게 말입니다.

당신은 썼습니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미래로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라고. 당신은 일기만을 쓰던 정웰링턴의 어느 한때를 다른 이들의 편지 속에 심어놓습니다. 멈춰버린 시계를 차고 있는 그에게 걸어가 그가 거처할 시간을 확보해줍니다. 당신의 서술을 따라가다가 우리는 체코의 한 시립 병원 담장을 혼자 걷고 있는 정웰링턴과 잊을 수 없는 조우를 하게 됩니다. 편지로 끝맺는 소설을 덮으며 그의 생을 미래의 시간 속으로 끌어당기게 됩니다. 그 순간에 이 소설은, 망각될지라도 사라지지는 않는 순간들에 바치는 한 소설가의 연서가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영원했다’는 내가 읽은 당신의 어떤 소설보다도 높은 온도를 가진 소설입니다. 내가 그러하듯 당신 또한 어떤 ‘견딜 수 없음’의 감각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고 이 소설이 생각하게 해주었으니까요. 그러니 나는 아마도 계속 궁금해할 것입니다. 당신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당신의 쓰기를. 당신의 혁명을.ㅡ최은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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