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의 환경칼럼] 말 두 마리 반대로 묶고 마차 몰기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2021. 10. 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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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된 無탄소 에너지 원자력 배제하고
마법 같은 미성숙 개념 기술 의존
실행 가능 로드맵 없는 탄소중립 시나리오

‘탄소중립’이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표준 설명은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인 후, 그러고도 남는 잔여 배출은 나무를 심어 흡수하거나 공장 굴뚝 등에서 걸러낸 후 지층 깊은 곳에 묻어 순(純)배출을 제로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이 등장한 이유는 제철, 시멘트 등 산업 분야에선 현재 기술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제철, 시멘트만 합해도 세계 배출의 20%가 된다.

탄소중립위원회의 지난 18일 전체 회의에서 윤순진 위원장이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2030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보고하고 있다. / 뉴시스

그렇지만 탄소중립엔 더 깊은 맥락이 있다. 1990년 스톡홀름환경연구소가 ‘2도 위험 한계’를 주장한 이래 ‘2도 억제’가 국제적 공인 목표가 됐다. 기온 상승치를 산업혁명 이전 대비 2도 아래로 묶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450ppm(다른 온실가스 효과까지 합치면 550ppm) 아래여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450ppm’도 많이 거론됐다.

2도, 또는 450ppm은 수치 목표로선 단순 명쾌하다. 하지만 개별 국가, 지자체, 기업, 개인이 뭘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기온 상승은 국가, 지자체, 기업, 개인의 행동이 모여 나타나는 전체 결과이기 때문이다. 반면 탄소중립은 개별 주체들의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 될 수 있다. 모든 규모, 모든 지역, 모든 분야 주체들이 각자 탄소중립을 이루면 지구 전체가 탄소중립이 된다. 2015년 파리 기후회의 전후로 탄소중립 개념이 자리를 잡았다.

탄소중립은 실천 지침으로는 실용적이었지만, 역작용을 불러왔다. 당초 취지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산업 분야만 불가피한 배출을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탄소중립 개념이 일반화하면서 ‘지금 우선 배출하더라도 나중 흡수·제거해 제로로 맞추면 되지 않느냐’는 논리로 활용됐다. ‘우선 배출, 나중 흡수’를 합리화시켜준 것은 미래 기후 예측에 쓰인 ‘기후-경제 통합모델’이었다. 물리 변수만 아니라 에너지 소비, 토지 활용, 인구, 도시화 등 사회경제 변수까지 반영시켜 미래 기후값을 계산하는 컴퓨터 모델을 말한다. 어떤 에너지를 써서 어떤 유형의 사회를 만들면 50년, 100년 뒤 지구 기후가 어떻게 될 거라는 답을 제공해줬다. 입력 자료를 넣으면 결과치가 나왔다.

통합 모델을 돌려보면 기존 기술로 ‘2도 억제’를 이루는 건 무리였다. 경제에 주는 고통이 너무 가혹했다. 그런 상황에서 신개념 기술들이 등장했다. 예를 들면 ‘온실가스 바이오포집처리(BECCS)’ 같은 기술이다. 광대한 토지에서 목재와 연료 작물을 수확해 그걸로 전기를 생산하거나 바이오 연료를 만들자는 것이다. 식물은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자기 몸체를 만든다. 그렇게 재배한 나무나 열매를 갖고 연료를 만들어 태우면 온실가스가 추가되지 않는다. 그런 다음 바이오 발전소나 연료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격리시켜 지층 속에 저장하는 것이다.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생산하면서 이산화탄소 농도는 되레 떨어뜨릴 수 있다. 나중엔 공기 중에서 직접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처리한다는 ‘직접 공기 포집(DAC)’도 등장했다.

통합 모델들은 앞다퉈 이런 ‘마이너스 배출(negative emission)’ 기술을 모델링에 반영시켰다. 언제 실용화될 지 전망이 불투명한 기술들이었지만 컴퓨터상으로는 얼마든지 ‘2도’ 그래프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2014년 유엔 기후과학기구(IPCC)의 보고서가 제시한 2도 달성 시나리오 대부분이 바이오포집처리를 적용한 것이었다. 마술 같은 그래프 그리기가 가능해지면서 ‘1.5도 목표’까지 나왔다. 2030년까지 배출을 45% 감축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면 1.5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1.5도 시나리오 중에는 심지어 세계 경작지의 40% 규모 토지를 바이오 에너지 생산에 동원한다는 것까지 있다. 그렇게 되고 나면 식량은 어디서 만들고 자연 생태계는 어떻게 되겠는가. 당장 시급한 배출 감축을 뒤로 미루는 핑계나 제공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가 오늘(27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할 ‘2050 시나리오’도 무모하긴 비슷하다. 시나리오엔 암모니아·수소 연료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는 ‘무탄소 신전원’이라는 것이 있다. 이 기술로 현재 24기 원전에서 생산하는 것의 두 배까지 전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암모니아·수소 터빈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등에서 개발 중이다. 미쓰비시의 지난 3월 보도자료를 찾아보니 ‘2025년께 40MW 기술 실험을 완료한다’고 돼 있다. 대형 원전 한 기의 30분의 1 설비다. 언제 이뤄질지, 이뤄지긴 할 건지 알 수도 없는 미성숙 기술을 믿고 검증된 무탄소 대형 전력원인 원자력발전소 19기를 2050년까지 폐쇄시키겠다는 것이 2050 시나리오다. 탄소중립, 탈원전을 동시에 하겠다는 것은 말 두 마리를 반대로 묶고 마차를 몰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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