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아픈만큼 섹시해지는 멧돼지,바비루사
더 길고 휜 송곳니 가져야 암컷들이 관심보여
바비루사는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동남아에 서식하는 멧돼지입니다. 말레이어로는 ‘돼지 사슴’이라는 뜻이랍니다. 가축인 돼지들도 저마다 다른 종이 있는 것처럼 이들의 조상인 멧돼지들도 지역에 따라 생김새도, 이름도 천차만별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라이온킹의 주연급 캐릭터 ‘품바’로 유명한 혹멧돼지(또는 사마귀멧돼지)가 있지요. 저멀리 미주대륙에는 멧돼지와 빼닮았는데 정작 분류학적으로는 제법 거리가 있어서 ‘멧돼지의 사돈의 팔촌’쯤 되는 페커리가 있고요. 바비루사는 얼핏 보면 아프리카의 혹멧돼지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고기가 정말 쫄깃하고 맛있는지 남획되는 바람에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전세계 동물원들의 협업으로 종 보전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 동물원에서 새끼 바비루사가 태어났습니다. 이 곳에서 바비루사가 태어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현지 신문과 방송들이 직접 취재를 올 정도로 화제였어요. 이 새끼는 암컷으로 판명났습니다. 조금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죠. 수컷이 아닌 암컷이어서 행운이라는 까닭은 바비루사 수컷으로 겪어야 할 천형(天刑)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비루사는 드물게도 수컷으로 살기 위해서는 태생적으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동물입니다. 바로 이빨 때문이죠. 젖먹이 짐승 중 상당수는 수컷이 암컷에 비해 뿔이나 이빨이 두드러지게 큽니다. 그런데 바비루사는 그 중에서도 수컷의 이빨이 기괴할정도로 두드러집니다.
바비루사의 경우 암컷은 아래턱의 송곳니가 있지만 거의 입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는데 비해 수컷은 아래턱은 물론 위턱에도 한 쌍이 더 납니다. 그런데 이 위턱의 한쌍의 모양이 정말 기괴해요. 콧등의 피부를 뚫고 위로 자라난 거거든요. 말하자면 의도하지 않은 천연 피어싱인 생입니다.
피부를 뚫고 솟다보니 이빨이 아니라 사슴이나 코뿔소의 뿔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내 송곳니가 위로 삐쭉하게 자라서 코와 눈 사이의 피부를 뚫고 나왔다고 상상해보세요. 이렇게 얼굴 피부를 뚫고 나온 송곳니는 다시 자라납니다. 하늘을 향해 치솟는것도 아니고 다시 얼굴 피부를 향해서 안쪽으로 둥글게 아치를 그리면서 끝은 다시 피부를 향하지요. 뿌리부터 피부를 뚫은 이빨의 날카로운 끝이 다시 눈과 이마를 찌르며 살갗을 파고드는 겁니다. ‘이까짓 고통, 남자는 다 이겨내는거야’라고 버텨내기에 이 이빨이 주는 고통의 강도는 만만찮아보입니다. 물론 이런 고통을 감내할 수 있게끔 감각기관이 발달해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그로테스크하게 자라는 수컷 바비루사의 위턱 송곳니의 용도가 대체 무엇인지, 적어도 인간의 눈에는 불명확하다는 점입니다.
우선 바비루사는 생긴 것은 살벌하게 생겼지만, 기본적으로 육식동물의 사냥감입니다. 겁이 많고 깊은 밤에만 행동하는 야행성이죠. 자신을 향해서 삐쳐나오는 송곳니로는 지렁이나 나무뿌리등을 파기도 어렵습니다. 자신을 지켜내는 무기가 되기는 더더욱 힘들죠. 실제로 번식철 수컷 바비루사들이 힘겨루기를 할 때는 송곳니는 놔두고 앞발만으로 육탄전을 벌입니다. 이러니 실용성은 없고, 고통만 가중시키는 송곳니의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듭니다. 오랫동안 이 짐승을 지켜봐온 과학자들은 일단은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성적인 매력을 최대한 어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콧잔등을 뚫고 솟아올라 둥글게 말려 다시 눈밑을 찔러들어가는 극한의 뿔을 가진 수컷일수록 암컷에게는 상남자, 아니 상수컷으로 보이게 된다는 것이죠. 우리가 이 짐승의 마음 속과 신체 매커니즘을 모르는 이상, 단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마도 가장 그럴듯한 추측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내슈빌의 새끼 바비루사가 암컷임을 알았을 때 이 아기의 부모와 동물원 스태프들도 수컷으로 겪어야 할 천형을 겪지 않아도 되기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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