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독일 총리직 마감하는 앙겔라 메르켈 완벽정리.zip [암호명 3701]

양다영 PD · 윤기은 기자 입력 2021. 10. 26.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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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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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6일(현지시간) 독일 총선 이후 1당에 오른 사회민주당(SPD)이 녹색당, 자유민주당(FDP)과 새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공식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연정이 구성되면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16년간 지켰던 총리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독일 최초 여성 총리이자 첫 동독·과학자 출신 총리. 헬무트 콜 전 총리와 더불어 독일 역사상 가장 오랜 재임 기간. 만 51세 역대 최연소 취임. 메르켈 총리가 만들었던 새로운 기록들입니다.

■동독 출신, 보수 정당 대표로

메르켈 총리는 동독 출신이지만 보수 성향을 띤 기독민주당(CDU·기민당) 대표를 지냈습니다. 독일이 한국처럼 분단됐던 시절 동독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서독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선택한 점을 떠올리면 의아한 행보지만 메르켈의 가정 환경에서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메르켈 총리는 목사였던 아버지의 목회 활동을 따라 동독 브란덴부르크로 이사를 갑니다. 동독의 교육이 사회주의 체제를 일방적으로 강요한다고 생각한 부모님은 메르켈과 동생 마쿠스, 이레네에게 사회 현상에 대한 토론 훈련을 시키며 시각을 넓혀주었다고 합니다.


라이프치히 대학교에 진학해 물리학을 전공한 메르켈 총리는 “(자연과학에 대한) 진실은 쉽게 왜곡되지 않는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과학자가 됐다고 합니다. 1986년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동독의 야당 ‘민주약진’(DA)의 컴퓨터 관리자로 취직을 한 뒤 DA 당원이 됐습니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된 이후 DA가 기민당에 흡수되면서 메르켈도 기민당원이 됐습니다. 당시 헬무트 콜 총리의 신임을 얻어 여성청소년부 장관, 환경부 장관직에 오르게 되고 2000년 기민당 대표로 선출됐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

메르켈 총리는 ‘위기’에 강했던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치자 4800억 유로의 대규모 구제금융을 단행했습니다. 이듬해 독일 국내총생산(GDP)은 5.7% 감소했지만, 실업률은 0.22% 늘어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2009년 그리스 정부의 재정적자가 유럽을 흔들자 “유로화가 실패하면 유럽도 실패한다”며 그리스에 돈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강력한 구조개혁과 긴축정책을 압박해 유로존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2015년 시리아 내전에 따른 난민들이 유럽으로 대거 유입됐을 때는 100만명에 달하는 난민을 수용했습니다. 국내 반대 여론이 커지며 2017년 총선에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3당으로 연방의회에 입성하는 결과로 이어졌지만 메르켈 총리는 당시 “전쟁으로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우리가 국경에서 거부한다면 독일은 더 이상 나의 조국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임기 말에는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3월 대국민 연설에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라며 발 빠르게 초기 대응에 나섰고, 7500억 유로 규모의 유럽연합(EU) 코로나19 경제회복기금 합의도 이끌었습니다. 예산 편성에 반대하는 국가 정상들을 일일히 설득한 결과였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합리적이고 포용력이 강한 리더로 꼽힙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이후 제기된 탈원전 정책이나 최저임금법, 모병제 전환 등 야당의 정책도 수용했습니다. 지난 8월 독일 공영방송 ‘ARD’의 여론조사에서 메르켈 시대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75%에 달할 정도로 높은 지지율을 받은 데에는 포용의 정치가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독일어로 ‘엄마’를 뜻하는 ‘무티’(mutti) 리더십이라고 불리는 면모입니다.

물론 메르켈 총리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그는 실패로 돌아간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지했습니다. ‘메르켈하다’(merkeln)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중요한 사항에 다각도로 고민하는 그의 정책은 ‘신중하다’는 평가과 함께 ‘우유부단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메르켈의 ‘마름모’ 사랑?

여기서 잠깐, 메르켈 총리의 TMI(Too Much Information)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손으로 마름모 모양을 만드는 포즈는 메르켈 총리를 나타내는 대표 포즈입니다. ‘밈’(meme)까지 생긴 이 손 모양에 대해 메르켈 총리는 “균형을 잡기 좋다”는 이유를 들지요. 기민당은 2013년 총선 선거운동 당시 이 손 모양을 그린 광고 벽화를 베를린에 걸기도 했습니다.

16년간의 독일 총리 직무를 마치고 떠나는 앙겔라 메르켈에 대해 국제부 윤기은 기자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 영상에서 확인하세요.

양다영 PD · 윤기은 기자 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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