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7년 근대의 탄생 - 스티븐 그린블랫 [이승우의 내 인생의 책 ③]
[경향신문]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갈릴레오 갈릴레이, 니콜로 마키아벨리, 토머스 홉스, 바뤼흐 스피노자 등 서양 근대를 열어젖힌 사상가나 예술가, 과학자들의 사유 저변에 똬리를 틀고 있는 책이 있으니, 바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이다. 그런데 워낙 불순한 생각―세계는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무수한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담겨있는 책이다 보니, 손에 손을 거쳐 전해지다가 그만 1000여년 동안 깊은 잠에 빠지게 되는 운명에 처한다.
이 책은 인문주의자이자 책 사냥꾼인 포조 브라촐로니에 의해 1417년, 독일의 궁벽한 수도원 서가에서 발견된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버금갈 정도로 읽는 족족 다음 쪽이 궁금해지는 흡인력에, 교황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인간의 욕망과 암투도 실감나게 그려진다. 이러한 내용이 <1417년 근대의 탄생>에 담겼다.
간서치(看書痴)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편집자로서 나 역시 책에 관한 책이라면 보이는 대로 구입해 읽는 편이다. 그렇다면 내게 <1417년 근대의 탄생>의 의미는? 포조처럼 나도 문명사에 길이 남을 책을 발견해내는 것?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포조의 꽁무니도 못 따라갈 범인(凡人)이니, 그저 의미 있는 책이라도 제대로 펴내자는 다짐에 그친다. 직업병인지 이 책에서 가장 와닿았던 글귀는 이렇다. “금, 은, 보석, 자줏빛 의상, 대리석으로 지어진 집, 성장(盛裝)한 말들, 이런 것들은 변덕스러우며 피상적 쾌락을 줄 뿐이다. 반면에 책은 우리의 뼛속 깊숙이 골수에까지 기쁨을 준다”.
끝으로 놀라운 점 하나. 저자 그린블랫은 셰익스피어 전문가로 교수를 역임했지만, 소설 같은 이 책으로 출간 당시 퓰리처상(논픽션 부문)을 받은 ‘작가’이기도 하다.
이승우 |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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