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쿠데타·정경유착 그늘과 북방외교 빛 남기고 떠난 노태우

2021. 10. 2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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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사망했다. 20년 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이래 투병해오다 병세가 악화돼 향년 89세로 삶을 마감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찬탈한 마지막 군인대통령이자 6·29선언으로 직선제 대통령제의 6공화국 헌법체제를 연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교차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하지만 본인이 역사에 지은 과오를 직접 속죄하지 않은 것은 못내 아쉽고 유감스럽다.

대한민국 5번째(13대) 대통령인 노 전 대통령의 집권 5년(1988~1993)은 전환기였다. 5·16군사반란으로 시작된 권위주의 체제가 문민정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고,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TK(대구·경북)의 31년 장기집권이 마지막 정점을 찍을 때였다.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이른바 3김과 노 전 대통령이 모두 생을 마치면서 대한민국 민주화의 제도적 틀을 다진 ‘1노3김’ 시대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성과는 역시 북방외교다. 1989년 동서냉전이 해체되기 시작하자 헝가리를 필두로 옛 소련·중국과 차례로 국교를 맺으면서 외교안보의 새 지평을 열었다. 1991년 북한과 유엔에 동시가입하고 이듬해 남북 간 평화 이정표를 새긴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한 것도 이 북방외교와 궤를 같이한다. 기업의 비업무용 토지를 규제한 토지공개념도 이때 처음 도입됐다.

그러나 그가 집권하는 동안 정치는 퇴행했다.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진 총선 2년 만에 보수3당이 합당해 지역주의를 심화시켰고, 정경유착도 깊어졌다. 노 전 대통령 자신이 추징금만 2628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기업들로부터 강탈했다 구속됐다. 1989년 해외여행을 자유화하면서도 끝내 5·18과 노동은 금기어로 만들었고, 집회와 표현의 자유도 옥죄었다. 이전 군사정부로부터 물려받은 공안통치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집권 구호인 ‘보통사람의 시대’는 희화화됐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오점은 전두환과 함께 5·17내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것이다. 징역 17년의 단죄를 받은 뒤 특별사면으로 풀렸고, 추징금도 2013년 완납했다. 비록 아들 재헌씨가 “병상에서 고갯짓과 눈깜박임으로 소통하는 아버지의 뜻”이라며 광주를 찾아 여러 차례 고개를 숙였지만 5·18에 대한 사죄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가족·지인들의 사죄와 진상규명 협조는 계속돼야 한다. 더불어 전두환씨의 각성을 촉구한다. 노 전 대통령의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장을 두고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민의에 따라 엄중히 결정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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