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돈에 '물탄' 문재인, '물 뺀' 전두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전두환 전 대통령도 잘한 일이 있다고 해 여야로부터 십자포화를 받았다. 그러나 틀린 말이 아니다. 경제에 관한 한 그렇다. 전두환 2기 집권기(1981년~1988년) 국내총생산(GDP) 연평균 성장률은 10.1%에 달했다. 자유시장경제 국가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전두환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윤석열 후보가 얼마나 깊은 이해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야권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후보의 경제정책 철학을 추정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각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활용하겠다고 했다.
어제 자 본보에 실린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칼럼 '국가주의 경제사상의 종언'은 문재인 정권의 역주행을 시급히 교정하지 않으면 한국경제가 회복 불능으로 빠질 것이라는 걱정이 진하게 배어있는 글이었다. 김 이사장은 공정거래, 소비자보호, 중소기업 체질강화, 세계화 등 굵직굵직한 정책적 이정표를 제시한 대표적 경제관료다. 그런 그가 거의 모든 것을 반(反)시장, 포퓰리즘 정책으로 해결하려는 문 정권을 보며 얼마나 답답해 하겠나.
어떤 거시경제 정책을 만드냐에 따라 국가경제의 흥망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경제관료 복이 넘쳤다. 똑똑하고 사명감 넘치는 전문 경제관료들이 제 역할을 해줬다. 윤석열 후보가 상정하는 전문가도 아마 그 같은 패기와 의욕, 책임감이 넘치는 인재들일 것이다.
전두환 시대부터 90년대 전반까지 한국경제가 도약할 수 있었던 데는 김재익이라는 한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전두환은 집권의 취약한 정통성을 경제 성공으로 만회하려 했다. 수십 %에 이르는 물가를 잡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김재익을 발탁해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앉힌 것은 신의 한수였다. 그가 김재익 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했다는 말은 지금도 경제관료의 역할과 중요성을 일컫을 때 회자되는 말이다.
김재익은 경제안정화를 위해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그때까지 가격통제와 같은 직접적 규제방식에서 벗어나 재정, 금융, 조세, 무역, 투자 등과 연계한 시장 친화적 거시안정책으로 전환했다. 그럼에도 80년 39.0%였던 물가상승률은 1년여 만인 82년 4.7%로 떨어졌고 이후 전두환 재임 내내 평균 0%대를 기록했다. 김 이사장은 당시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 총괄과장으로서 김 수석과 이 같은 성과를 합작한 주역이다. 김 이사장은 2019년 펴낸 회고록 '명과 암 50년-한국경제와 함께'에서 청와대에서 김 수석과 물가대책회의를 하고 나온 소감을 "압도적 경험이었다"고 회고했다.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은 보통 돈을 푸는 인기영합정책에 현혹되기 쉽다. '보궐정권'인 문재인 정부가 줄곧 확장적 재정으로 거의 10년 만에 3.0%를 위협하는 물가상승률을 만들고 부동산 정책에 대실패를 한 것도 포퓰리즘에 기인한다. 김재익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예산을 도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전두환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김재익 수석이 19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에서 서거하지 않았다면, 이후 한국경제는 훨씬 더 빨리 성장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그만큼 경제정책은 우리 삶을 결정한다. 홍준표든 윤석열이든 정권교체가 되면 다시 경제관료들의 백화제방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서가 있다. 지도자가 사람을 끌 수 있어야 한다. 인간미다. 김 이사장은 청와대 보고를 끝내고 나올 때면 전 전 대통령이 등을 두드리며 "김 국장, 잘해줘"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어떤 대선 후보가 보여주는 것처럼, 만약 전두환이 모질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면 인재들이 곁에 있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기에 투철한 자유주의자인 김재익이 독재자의 참모가 될 수 있었던 거다. 그는 전두환 너머 국민을 봤다. 팔순 노모가 김재익에게 인플레이션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아들은 "돈에 물을 탄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이해하기 쉽게 인플레이션을 설명한 말이 없다. 전두환은 돈에 물을 뺐고, 문재인은 물을 탔다. 그래서 서민들 삶은 어떻게 되었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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