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주도·87체제 첫 직선'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종합2보)
3金 누르고 87년 대통령 당선..'12·12, 5·18 단죄·비자금 조성' 옥고
국가장·국립묘지 안장 미정, 靑 "절차·논의 필요"..10·26 박정희 기일에 떠나
(서울=연합뉴스) 이준서 이유미 김잔디 기자 =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향년 89세.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온 노 전 대통령은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이날 오후 1시 40분께 삶을 마감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고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이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요양해왔다.
지병으로 희귀병인 소뇌 위축증과 천식까지 더해져 투병 생활을 하면서 공개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 장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지난 4월 노 전 대통령이 호흡곤란 증상으로 고비를 겪은 뒤 SNS 글을 통해 "소뇌 위축증이란 희귀병인데 대뇌는 지장이 없어서 의식과 사고는 있다"며 "이것이 더 큰 고통"이라고 적은 바 있다.
병마와 싸우던 고인은 우연의 일치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1979년 10월 26일)과 같은 날 세상을 떠나게 됐다.
1932년 12월4일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용리(현 대구 동구 신용동)에서 면 서기였던 아버지 노병수와 어머니 김태향의 장남으로 태어난 노 전 대통령은 경북고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안사령관, 체육부·내무부 장관, 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를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은 육군 9사단장이던 1979년 12월12일 육사 11기 동기생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하나회' 세력의 핵심으로서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다.
쿠데타 성공으로 신군부의 2인자로 떠오른 노 전 대통령은 수도경비사령관, 보안사령관을 거친 뒤 대장으로 예편, 정무2장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어 초대 체육부 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민정당 대표를 거치면서 군인 이미지를 탈색하고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5공화국 말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이을 정권 후계자로 부상, 1987년 6월10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지명됐다.
이후 전두환 정권의 간선제 호헌 조치에 반발하는 시위가 확산하자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이른바 '1987년 체제' 탄생을 가져왔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성과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져 야당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부상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야권 후보 분열에 따른 '1노(盧)3김(金)' 구도의 반사 이익을 보면서 같은 해 연말 대선에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보통사람 노태우'를 슬로건으로 내건 노 전 대통령은 직선 대통령에 선출된 뒤 민주주의 정착과 외교적 지위 향상, 토지공개념 도입 등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김대중 사면복권, 시국사범 석방 등을 담은 6·29 선언을 통해 신군부의 공포 이미지를 희석하고 '민주주의를 수용한 온건 군부' 이미지를 구축, 위기에 처했던 군사정권을 안정시키고 대선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
안으로는 국민통합, 밖으론 북방외교와 남북관계 개선을 기치로 내건 노 전 대통령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88 서울올림픽 개최, 옛 소련·중국과의 공식 수교 등 성과를 내며 외교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퇴임 후 12·12 주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수천억 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수감됐고 법원에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천600억여 원을 선고받는 등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한 면을 장식했다.
1997년 12월 퇴임을 앞둔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됐지만, 오랫동안 추징금 미납 논란에 시달리다가 지난 2013년 9월에야 뒤늦게 완납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소영, 아들 재헌이 있다. 소영 씨와 이혼 소송 중인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사위이다.
빈소는 27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차려질 예정이다.
국가장, 국립묘지 안장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의 사망 후 국가장으로 치러진 것은 2015년 11월 별세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 가능하다"며 "다만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립묘지 안장에 대해선 "국민 수용성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한 정무적 판단이 필요할 수 있다. 내부 절차에 따라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
lkw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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