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정책' 업적으로, 비자금과 5·18 가해는 수치로 [노태우 사망]

곽희양·탁지영 기자 2021. 10. 2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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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90년 9월 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를 맞아 악수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노 전 대통령은 탈냉전 시기 남북 화해의 물꼬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록 미완에 그쳤지만 부동산 개혁을 시도한 점도 높이 평가된다. 그러나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5·18민주화 운동에서 광주 시민을 학살한 책임은 크나큰 과로 남았다.

노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은 탈냉전이라는 국제정세를 읽고 기민하게 대처한 업적으로 꼽힌다. 그는 헝가리(1989년) 등 동구권 국가를 시작으로 소련(1990년), 중국(1992년)과 수교를 맺었다. 북한과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을 맺어, 남북 화해협력의 기반을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11년 발간한 <노태우 회고록>에서 북방정책에 대해 단계적으로 소련·중국·동구권 국가들과 수교해 북한을 포위하고, 남북한 통일을 이루며 최종적으로 생활·문화권을 연변과 연해주 지역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밝혔다. 단, 노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의 대북 포위전략이 북한으로 하여금 체제 위기감을 키워 핵개발에 나서도록 했다는 지적도 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을 높이 평가했다. 지난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이 공개한 영상에서 2007년 김 전 대통령은 “통일 문제에 대해 그러한(유연한) 자세를 취한거나 소련이나 중국하고 국교한 것은 아주 평가 받을 일”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민정당 대표였던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담은 6·29선언을 발표한 것으로 역사에 남아있다. 6·29선언은 1987년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 대투쟁의 열기를 집권세력이 수용한 결과다.

하지만 이는 전두환 정권이 끝난 뒤에도 군사정권을 연장하려는 시도로 평가됐다. ‘전두환 기획·연출, 노태우 주연의 연극’이라고 보는 것이다. 6·29선언 25주년을 맞은 2012년 한인섭 서울대 교수는 “6·29선언은 군부독재 연장 위해 ‘민주화의 공로’를 노태우의 것으로 포장하고자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완에 그쳤지만 ‘토지공개념’을 도입해 근원적인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5월 초법적이라는 비판을 감내하고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매각 명령을 내렸다. 대기업의 부동산 사재기에 제동을 건 것이다. 하지만 1994년 관련 법률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동력을 상실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까지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축재한 것은 부정부패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1995년 10월 박계동 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비자금 의혹이 불거지자, 노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재임 중 약 5000억원의 ‘통치자금’을 조성했으며, 퇴임 당시 그 중 1700억원 가량이 남았다”고 시인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과정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도 드러났고, 두 사람은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17년, 추징금 2628억9600만원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는 회고록에서 97회에 걸쳐 2398억원의 추징금을 납부했다고 밝혔다.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2016년 4월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조세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을 보도하며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숨기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5·18 가해자’라는 비판도 받는다. 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였던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와 함께 학살의 주범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들은 옛 대통령 별장인 충북 청주시의 청남대 오각정에 있던 두 사람의 동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고, 충북도청은 지난 달 동상을 청남대 관리사무소 근처로 옮겼다. 노 전 대통령의 동상 앞에는 ‘반란중요임무 종사 등 8개 죄목으로 징역 22년 6월, 2838억원 추징 선고’ 등의 사실이 기록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는 2019년부터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지만, 그 진정성은 여전히 의심받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5·18은 유언비어가 진범이다”고 썼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을 상대로 민주화 운동당시 발포 명령 등에 관한 조사를 추진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진척되지 못했다.

곽희양·탁지영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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