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사과' 한마디 없이 떠난 노태우..오월단체 "죽음으로 죄 사라지지 않아" [노태우 사망]

강현석 기자 2021. 10. 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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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대통령이었던 1981년 7월 청와대에서 육군대장으로 진급한 노태우 장군(오른쪽)에게 계급장을 달아주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6일 8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전직 대통령 노태우씨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유혈진압의 최고 책임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90)와 함께 12·12군사반란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한 노씨는 5·18당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주요작전을 결정하는데 참여했다.

신군부의 5·18 진압으로 당시 광주시민 356명(사망 165명·행방불명 78명·상이후 사망 113명)이 희생됐다. 하지만 노씨는 생전에 5·18에 대해 피해자와 유족, 광주시민들에게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

전씨가 대통령이 된 이후 옛 국군보안사령부가 1982년 비밀리에 발견한 <제5공화국 전사(前史)>에는 5·18당시 신군부의 움직임이 적혀 있다. <5공 전사> 4권을 보면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노씨는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씨와 함께 계엄군의 주요 작전을 결정하는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1980년 5월17일 국방부장관실에서 열린 전군지휘관회의에 참석, 5·18의 도화선이 된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를 주장했다. 노씨는 이 자리에서 “군이 정부를 도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신군부는 5월18일 0시를 기해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고 광주에 7공수 여단이 투입되면서 5·18 강경진압이 시작됐다.

노씨는 5월19일부터 5·18진압 방식을 논의하기 위해 군 수뇌부가 ‘전례없이’ 격일마다 개최한 회의에도 꼬박꼬박 참석한 것으로 나온다. <5공 전사>에는 5월21일 사실상의 발포 명령인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이 결정된 회의에도 노씨가 전씨와 함께 참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런 이유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노씨가 5·18당시 발포 명령 등을 밝힐 수 있는 중요 인물 중 한명으로 보고 지난달 1일 “대면조사를 받으라”는 서한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12·12군사반란과 5·18무력진압 등에 관여한 혐의로 1996년 기소된 노씨는 법원에서 반란중요임무종사·상관살해·내란모의참여·뇌물 등 무려 7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기도 했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 형이 확정됐으며 그해 12월 특별사면됐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씨에 대해 “전두환의 참월(僭越·분수에 넘침)하는 뜻을 시종 추수(追隨·뒤쫓아 따름)하여 영화를 나누고 그 업(業)을 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씨는 2011년 발간한 <노태우 회고록>에서 5·18에 대해 “유언비어가 원인이었다”며 신군부의 입장을 두둔했다. 생전에 5·18유족이나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2020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제13대 대통령 노태우’라고 쓰인 조화를 헌화하고 있다. 국립5·18민주묘지 제공.

다만 노씨의 아들 재헌씨가 2019년 8월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재헌씨는 2020년 5월29일에는 5·18묘지에 ‘제13대 대통령 노태우’라고 쓰인 조화를 헌화하고 지난 4월에도 5·18묘지를 참배했다.

오월 단체는 지난 5월 재헌씨의 잇단 참배에 대해 공동성명을 내고 “노태우 일가는 진정성 없는 보여주기식 5·18 ‘반성 쇼’를 중단하라”며 5·18을 왜곡하는 내용이 포함된 노씨 회고록을 개정하고 5·18관련 자료 공개 등 진상 규명에 먼저 협조하라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재현씨의 몇 차례 참배가 노씨의 5·18 학살 책임을 용서받은 것처럼 평가받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면서 “대리사죄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진심어린 사죄와 함께 5·18진상규명을 위한 적극적인 협조가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노씨 사망에 대해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노씨는 5·18 진상규명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사망했다고 해서 진상규명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본인의 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면서 “아들의 ‘대리 사죄’도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영훈 5·18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은 “노씨가 진정으로 사과했다면 5·18유족과 시민들은 충분히 용서할 마음이 있었는데 안타깝다”면서 “고인의 죽임에 애도를 표하지만 ‘국가장’ 등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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