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이해할 수 없다 해도, 다가서려는 마음"..'방금 떠나온 세계' 펴낸 소설가 김초엽 [인터뷰]
[경향신문]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김초엽의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에 수록된 단편 ‘로라’에서 ‘진’은 존재하지 않는 세번째 팔에 통증을 느끼는 연인 ‘로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진은 로라의 고통에 다가서려 하지만, 동시에 세번째 기계 팔을 장착해 ‘트랜스 휴먼’이 된 그의 선택에 대해서는 혼란을 느낀다. 그러나 “증강도 향상도 아닌” 그 선택을,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고통과 고민을 이해하려는 노력까지 멈추지는 않는다. 끝내 이해할 수 없을 것을 알면서도, “광막한 우주 속을 영원토록 홀로 떠돈”(‘작가의 말’)다고 해도 타인의 세계에 다가서고 그 세계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 그런 조심스러운 마음의 조각들이 이 책에 담겼다.
2019년 출간 후 25만부가 팔린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단숨에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른 김초엽이 두번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를 펴냈다. 25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김초엽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인지 세계를 가진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라며 “인간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들을 하나씩 비틀어보자는 생각으로 썼다”고 말했다.
첫 소설집이 다양한 소재와 주제에 걸쳐 있다면, 이번 책에 수록된 7편의 단편은 비교적 일관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각 단편들이 담고 있는 세계는 시공간을 짐작할 수 없는 우주의 저편부터 지금 이곳의 이야기까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장애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결핍이나 소수자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아예 다른 감각과 인지체계를 지닌 존재로 그려진다. ‘마리의 춤’에서 시지각(視知覺) 이상을 갖고 태어난 ‘모그’들이 자신들의 인지 체계를 바탕으로 세상의 전복을 꿈꾼다든가, 어느 먼 미래 다른 행성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후손들이 ‘원형 인류’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입자들로 세상을 인식하고 소통하는 식(‘숨그림자’)이다. 장애를 지닌 몸에 대한 탐구와 소위 ‘정상성’에 대한 질문들이 소설들에 담겼다. “평소 인지과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김초엽은 “우리 각자가 다르게 보고, 듣고, 인식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아예 다른 차원의 인지 세계를 그려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인간의 감각에 대해 하나씩 덜어보고 뒤틀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각각의 소설들이 하나씩 다른 감각 범위를 다루고 있어요. ‘마리의 춤’은 시각을, ‘숨그림자’는 후각을, ‘로라’는 촉각과 몸의 수용 감각을 다루고 있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오감 외에 ‘시간에 대한 감각’ 이야기도 있는데, ‘케빈 방정식’이 그렇습니다. 인지과학에 대한 논픽션인 카라 플라토니의 <감각의 미래>라는 책에서 발상을 얻었어요.”
소설 속 세계는 이처럼 ‘다른 감각’이 존재하는 곳이기에, 장애는 ‘다른 것’일 뿐 손상이나 결핍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세계와 가능성에 접속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단편 ‘인지 공간’에선 신체 조건 때문에 공통의 지식 공간인 인지 공간에 진입하지 못한 ‘이브’만이 보편적 진실이 억압해온 개별적 진실을 좇아 인지 공간 너머 우주의 무한함에 다가선다.
김초엽의 문제의식은 그가 올해 초 김원영 변호사와 함께 펴낸 인문 에세이 <사이보그가 되다>의 연결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각 3급 청각장애와 지체장애로 보청기와 휠체어를 이용하는 두 저자는 과학기술이 장애를 종식할 것이란 기술낙관론에 의문을 제기하며 각기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을 환대하고 접속하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 김초엽은 “처음부터 장애를 다뤄야겠다고 의도하고 쓴 소설은 아니지만 <사이보그가 되다>를 2년 가까이 작업하다 보니 작업 시기가 겹치기도 했고, 그때 갖고 있던 문제의식들, 아이디어가 될 만한 발상들이 소설로 옮겨진 것 같다”고 말했다. “쓰고 보니 두 책의 주제의식이 연결돼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책을 벌써 읽은 독자님들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사이보그가 되다>를 더한 것 같다는 감상평을 주시기도 했어요.(웃음)”
책의 제목 ‘방금 떠나온 세계’는 단편 ‘인지 공간’ 속 마지막 대목의 문장을 따 왔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딘가 떠날 준비를 하거나 남겨져 있죠. 떠나온 사람과 남겨진 사람, 그 세계를 떠나오면서도 잊지 않는 마음 같은 것들을 포괄하는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은 타자에 대한 손쉬운 이해를 그리지도, 그렇다고 단절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소설 ‘로라’ 속 ‘진’의 말처럼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여러 ‘교차점’들이 책에 담겼다. 그렇게 김초엽의 소설은 광활한 우주의 건너편을 그리면서도, 기어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때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로 쉽게 밀어내려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중심에 있는 이들에게 ‘이해’ 받아야 하는가, 의문이 항상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려고 다가가는 태도 자체가 폭력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모순적일 수 있는, 스스로도 결론 지을 수 없는 생각들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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