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동기' 노태우·전두환..60년 걸친 애증 관계 [노태우 별세]

정현용 입력 2021. 10. 26. 15:37 수정 2021. 10. 2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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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동기서 후계자로

육사 11시 동기생으로 만나
쿠데타 뒤 정치적 2인자로
‘5공 청산’으로 전두환 불만
노태우 “국민 요구 무시하면 독재”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대표(왼쪽)가 전두환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 2021.10.26 연합뉴스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별세하면서 60여년에 걸친 ‘육사 동기’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인 애증 관계도 끝이 났다.

노 전 대통령은 대구공고의 전신인 대구공업중을 거쳐 1951년 경북고를 졸업했다. 한 살 많은 전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대구에 정착해 같은 해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1952년 육사 제11기(정규 육사 1기) 동기생으로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생도 시절 럭비부에서, 전 전 대통령은 축구부에서 활동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위 시절인 1959년 김옥숙 여사와의 결혼 당시 전 전 대통령이 사회를 봐줄 정도로 두 사람은 돈독했다.

●쿠데타 당시 9사단 병력 동원해 권력장악 도와

노 전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을 시작으로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 전 전 대통령이 거쳐 간 자리를 이어받았다.

12·12 쿠데타 당시에는 자신이 맡고 있던 9사단 병력을 중앙청으로 출동시켜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이 주도하는 신군부의 권력장악 과정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는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전 전 대통령의 권고로 군문을 떠나 정두환 정권에 합류했다. 전 전 대통령의 튼튼한 신임을 바탕으로 정무장관에서 시작해 초대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 위원장, 대한체육회장, 민정당 대표위원, 제12대 국회의원(전국구) 등을 거치며 2인자로서의 터를 닦았다.

-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민정당 총재 1987,6,6 서울신문 DB

1987년에는 전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으며, 직선제 개헌 약속 등을 핵심으로 하는 전격적인 6·29 선언과 ‘보통 사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이른바 ‘3김’을 따돌리고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사관학교 생도 시절부터 시작해 전 대통령과 내가 국정 최고책임자로 나설 때까지 우리의 관계는 돈독했다. 우정과 동지애가 유난히 강했는데 공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특수한 관계였다”고 적었다.

●대통령 취임 후 ‘5공 청산’ 거센 바람…관계 삐걱

그러나 취임 이후 ‘5공 청산’이라는 거센 바람이 불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요구가 빗발치자 노 전 대통령은 민심이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한 곳에 가 있으라고 권고했고, 전 전 대통령 측은 백담사를 택했다.

전 전 대통령은 백담사로 떠나기 전날인 1988년 11월 22일 밤 노 전 대통령에게 전화로 백담사 은둔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전임자의 신변을 안전하게 해주지 못해 부끄럽다. 잠시 고생스럽더라도 참고 견디면 조속한 시일 내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원상으로 회복하겠다”고 달랬다.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와 비자금 사건 등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1995년 11월 16일과 같은 해 12월 3일 나란히 구속돼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을,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의 중형을 각각 선고받은 뒤 같은 해 12월 당시 임기 말이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5.18사건 선고공판 출석한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 -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2021.10.26 연합뉴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은 먼저 검찰 소환에 응해 구속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노태우가 일을 그르쳤어. 그렇게 쉽게 검찰에 가는 것이 아닌데 끝까지 버텼어야지”라면서 강한 불만을 터트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은 또 “나는 땜쟁이(대구공고) 출신이고 노씨는 명문고(경북고) 출신인데도 나보다 뒤처졌던 현실에 대해 불만이 있었을 수도 있다”면서 “노씨 및 부인 김옥숙씨가 대통령과 영부인이 된 뒤 사람이 확 달라져 버린 것을 보고 친구나 동기에게 후임 자리를 물려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그들(5공 측 인사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면 대통령이 아니라 독재자라는 것이 나의 철학이었다. 그런 인식 차이로 인해 전임자는 나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면서 서운해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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