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10년 만에 '200만 원→50억'..카이스트에 모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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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두 발로 걷는 인간형 로봇 '휴보'를 만든 '휴보 아빠' 오준호(67) KAIST 기계공학과 명예교수가 학교에 50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오 교수는 "대학에 지원된 연구비의 결과가 창업으로 이어지고, 다시 대학으로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의 선례를 남기게 되어 큰 보람을 느낀다"며 "이 기금이 KAIST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유용하게 사용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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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교내 창업 기업인 만큼 모범을 보여 달라는 기대와 응원이 많았는데 이렇게 보답할 수 있게 돼 정말 기쁩니다"
국내 최초로 두 발로 걷는 인간형 로봇 '휴보'를 만든 '휴보 아빠' 오준호(67) KAIST 기계공학과 명예교수가 학교에 50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KAIST 창업 기업의 기부액 중 역대 최고액입니다.
KAIST는 어제(25일) 대전 본원에서 오준호 교수, 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이사, 이광형 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감사패 전달식을 했습니다.
지난 2011년 오 교수는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 기업인 '레인보우로보틱스' 창업과 동시에 회사 주식 20%를 학교에 기증했습니다.
연구와 창업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학교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자체 개발한 DRC-휴보가 2015년 세계 최고 재난 대응 로봇을 뽑는 대회인 미국 국방부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우승하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서는 등 화려한 성과를 냈습니다.
이에 힘입어 오 교수는 지속적인 혁신과 기술 개발을 바탕으로 지난 2월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코스닥 시장 상장까지 성공시켰습니다.
10년 전 KAIST가 기증받을 당시 200만 원이었던 400주의 주식은 코스닥 상장을 거쳐 무려 50억 3천900여만 원까지 치솟았고, 그 결과 오 교수는 학교에 50억 원을 기부하는 결실을 낳았습니다.
이는 KAIST 교내 창업기업의 발전기금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KAIST는 이를 '오준호 기금'으로 명명해 활용할 계획입니다.
오 교수는 "대학에 지원된 연구비의 결과가 창업으로 이어지고, 다시 대학으로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의 선례를 남기게 되어 큰 보람을 느낀다"며 "이 기금이 KAIST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유용하게 사용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오 교수가 선배이자 스승으로서 훌륭한 본보기와 큰 재원을 마련해준 만큼 후배 교수들과 학생들이 대학의 창업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술 창업을 이어가 더 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KAIST 교수직에서 은퇴한 오 교수는 현재 ʻ레인보우 로보틱스ʼ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활약하며 인간형 이족보행 로봇 플랫폼, 4족 로봇, 협동로봇, 천문우주 관측용 핵심기구 개발 등 로봇 기능을 고도화하기 위한 각종 기술 연구·개발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뉴스 픽'입니다.
(사진=KAIS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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