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하얼빈 의거 배후 조사는 日의 항일세력 조사 시작점"

오남석 기자 2021. 10. 2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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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중국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안중근(사진)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직후 진상 규명과 연루자 색출, 재판 지원 등 일본 정부의 후속 작업을 망라한 사료집 '이토공작만주시찰일건(伊藤公爵滿洲視察一件)'이 하얼빈 의거 112주년인 26일 '그들이 기록한 안중근 하얼빈 의거'(태학사)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됐다.

이태진(78)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가 원장으로 있는 한국역사연구원이 펴낸 이 책에는 총 11권 분량의 '이토공작만주시찰일건'의 기본 정보, 그 안에 담긴 1778건의 문서 가운데 주요 자료 24건의 원문·번역문·해설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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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거 112돌…사료집 번역 출간

1909년 중국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안중근(사진)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직후 진상 규명과 연루자 색출, 재판 지원 등 일본 정부의 후속 작업을 망라한 사료집 ‘이토공작만주시찰일건(伊藤公爵滿洲視察一件)’이 하얼빈 의거 112주년인 26일 ‘그들이 기록한 안중근 하얼빈 의거’(태학사)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됐다. 이태진(78)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가 원장으로 있는 한국역사연구원이 펴낸 이 책에는 총 11권 분량의 ‘이토공작만주시찰일건’의 기본 정보, 그 안에 담긴 1778건의 문서 가운데 주요 자료 24건의 원문·번역문·해설이 실렸다.

1910년 2월 23일 재하얼빈 총영사대리 영사관보 오노 모리에는 관동도독부 민정장관대리 사토 도모쿠마에게 보낸 ‘사형수 안중근에 관한 건’이라는 문서에서 한국인들이 안 의사를 하얼빈 한국인 묘지에 후하게 매장해 숭경의 중심이 되도록 하려 한다는 첩보를 전했다. 그러면서 “만약 위 사형수의 사체를 이 사람의 유족의 손에 넘기는 경우에는 그 무분별로 인해 어쩌면 위와 같은 계획이 실현되지 않기를 담보하기 어렵고, 이렇게 하여서는 장래를 위해 좋지 않을 것이라 사료”된다는 우려를 전했다. 1909년 12월 6일 작성된 ‘이토공 가해 사건 관련 수사 방법에 관한 보고 건’ 등에는 재하얼빈 일본 총영사가 한국인들의 동향 파악을 위해 한국인 밀정을 활용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러시아 화폐 300루블의 공작금 사용을 속히 허가해줄 것을 본국에 요청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교수는 “하얼빈 의거 배후 조사 기록은 곧 일본 측의 한국 항일 저항 세력 조사의 시작점이었다”고 평가했다.

재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총영사가 1910년 2∼3월 작성한 문건에는 고종 황제가 안 의사 구출을 위해 밀사를 파견한 사실, “한인 밀정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배일(排日)의 본원은 말할 것도 없이 한국 황실”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안 의사 통역을 맡은 경찰 소노키 스에키가 작성한 ‘살인범 안중근의 최후’(1910년 3월 16일)라는 문건에는 “안(안중근)의 모든 복장은 지난밤 고향에서 보내온 명주의 조선복을 입고 품에 성화(聖畵)를 품고 있었는데, 그 태도는 대단히 침착하여 안색과 언어에 이르기까지 평상시와 조금의 차이도 없이 종용자약하고 깨끗하게 그 죽음으로 나아갔다”고 기록돼 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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