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소시오패스..의료인의 윤리 對 의무

기자 2021. 10. 26. 11:3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환규 하트웰의원 원장 前 대한의사협회장

직접 진료 않은 환자에 대해서

전문가적 의견 내면 비윤리적

美 ‘골드워터 룰’ 한국도 채택

정신건강 전문가는 환자 외에

위협 받는 개인도 보호할 책임

나라가 위험할 우려 땐 더 중요

최근 원희룡 후보의 부인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강윤형 씨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소시오패스라고 평가해 파문이 일었다. 매일신문 유튜브 방송에서 진행자가 이 후보에 대해 “야누스, 지킬 앤드 하이드가 공존하는 사람 같다”고 말하자, 강 씨가 “지킬과 하이드, 야누스라기보다는 소시오패스나 안티소셜(anti-social) 경향을 보인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라고 하는데 자신은 괴롭지 않고, 주변이 괴로운 것이어서 치료가 잘 안 된다”고 발언한 것이다. 이에 대해 여당이 “의료윤리를 위반했다”며 강력히 반발했고, 22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강 씨에게 구두 경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본인은 부인하고 있다. 강 씨는 의료윤리를 위반한 것이 맞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의료윤리를 위반한 것이 맞다.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어느 잡지사가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배리 골드워터의 정신상태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지에 대해 1만2356명의 정신과 의사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일이 있다. 설문에 응한 2417명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운데 1189명이 “골드워터의 정신상태는 대통령직 수행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답변했고,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참패한 골드워터는 잡지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이 사건은 정신과 의사가 자신이 직접 진료하지 않은 유명인에 대한 견해를 내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사건이 일어난 지 9년 뒤인 1973년 미국정신과학회는 ‘의사가 직접 진찰하고 정보 공개에 대해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과 의사가 전문가적 의견을 제공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라는 윤리 규정을 채택했다. 직접 진료하지 않은 환자에 대해 전문가적 의견을 내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골드워터 룰(Goldwater Rule)로 불리게 됐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한국판 골드워터 룰을 학회 정책으로 채택했다. 이것이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강 씨에게 ‘구두 경고’를 준 배경이다.

반면, ‘골드워터 룰’ 외에 정신과 의사가 지켜야 할 또 다른 의무가 있다. 이른바 ‘경고 의무(Duty to Warn)’다. 1969년 미국의 ‘포다르’라는 대학생이 자신과 잠시 사귀었던 ‘타라소프’라는 여대생을 살해할 계획을 심리상담사에게 털어놨고, 이 범죄 계획을 들은 심리상담사가 학교 경찰에 알렸으나 타라소프와 가족은 위험성에 대한 고지를 받지 못했다. 잠시 구금됐다가 풀려난 포다르는 끝내 타라소프를 칼로 찔러 살해했고, 타라소프의 가족은 위험을 알리지 않은 학교 당국을 고소했다.

7년 후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정신건강 전문가가 환자뿐 아니라 환자에게 특히 위협을 받고 있는 개인을 보호할 의무도 함께 지닌다”고 판결했다. 전문가에게 환자의 비밀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환자가 가진 위험성으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는 개인을 보호할 또 다른 의무, 이른바 ‘경고의 의무’가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방송에서 강 씨는 이 후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 후보는) 자기편이 아니면 아무렇게 대해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듯 답변한다.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이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의혹 국정감사 태도, 형과 형수한테 한 욕설 파동, 김부선 씨와 연애 소동 등을 볼 때 남의 고통이나 피해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 소시오패스의 전형이다.” 그리고 강 씨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강 씨 발언의 배경에는 ‘소시오패스의 전형적 행동을 보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이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는 ‘두렵다’고 말했다. 나라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의사는 골드워터 룰이라는 의료윤리를 지켜야 하는 의무와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될 국민에게 그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는 의무 사이에서 갈등할 수 있다. 이번 강 씨 발언에 대해 골드워터 룰이 적용돼야 할까, 아니면 경고의 의무가 적용돼야 할까? 그에 대한 결론은 시간이 지난 후에 자연스럽게 평가받게 될 것이다. 다만, 국가가 위험에 빠지는 일이 일어난 뒤라면 무척 유감일 것이다.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