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아이돌' 허웅, DB 슈터 계보 잇는다

김종수 2021. 10. 2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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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DB의 팀 색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같은 질문에 십중팔구는 높이를 꼽을 것이다. 은퇴한 프랜차이즈 스타 김주성(42·205cm)이 버티고 있던 시절 외국인 빅맨을 더해 대부분 시즌 ’트윈 타워‘를 가동했고 이후에는 3번, 4번에서 모두 정상급 기량을 선보였던 윤호영(37·197cm)까지 더해져 'DB 산성'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올 시즌 역시 DB의 높이는 여전하다. FA시장에서 거액을 들여 데려온 국가대표 센터 김종규(30·207㎝)가 건재한 가운데 강상재(27·200㎝), 김철욱(29·203㎝)까지 추가됐다. 변변한 토종 빅맨 한명 없는 팀들 입장에서는 그저 부럽기만한 DB의 포스트다. 김주성 시대 이후로 높이 하나 만큼은 꾸준하게 경쟁력을 가져가고 있다.

하지만 농구는 팀 스포츠다. 높이가 절대적 영향력을 차지하는 것은 맞지만 그러한 강점을 활용하기 위해서 외곽지원은 필수다. 실제로 높이로 성적을 낸 팀들의 대부분은 빼어난 외곽슈터를 겸비하고 있었다. 듬직한 빅맨과 정교한 슈터는 최고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높이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DB 또한 대대로 출중한 외곽 슈터가 함께했다. 초창기 나래 시절 팀내 간판스타였던 ’사랑의 3점슈터‘ 정인교를 필두로 수비능력을 겸비했던 양경민, 잘생긴 외모로 큰 인기를 끌었던 이광재 등 존재감 넘치는 저격수들이 외곽을 책임졌다. 주로 식스맨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승부처에서 유달리 강한 배짱을 자랑했던 손규완도 빼놓을 수 없는 DB의 스나이퍼였다.

역대 최고 외국인 슈터 데이비드 잭슨(43·191cm)은 원주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DB팬들로서 잊지 못할 존재다. 잭슨은 말 그대로 ’슛 원툴‘ 외국인 선수였다. 단신 외국인 선수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폭발적인 운동능력이나 다재다능한 테크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놀라운 센스로 경기 흐름을 바꾸는 선수도 아니었다. 간혹 어이없는 플레이로 팀 동료들까지 뒷목잡게 하기 일쑤였으며 외국인 선수답지 않게(?) 수비 좋은 국내 선수에게 꽁꽁 묶이는 경우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DB는 잭슨을 버릴 수 없었다. 슈팅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영점이 안 잡히는 경우 다소 헤매기도 했으나 한번 손끝 감각을 찾게 되면 무섭게 폭발했다. 안정감보다는 기복은 있지만 몰아치는 슈터였다. 이런 유형은 높은 점수를 받지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잭슨의 폭발력은 모든 것을 잊게 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누구를 붙여놓아도 감당이 안됐다. 거리조차 따지지 않고 난사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던져댔는데 그럼에도 성공률이 높았던지라 이른바 ’잭슨타임‘이 시작되면 상대팀은 초토화가 되어버렸다. 잭슨은 정규리그 3점슛 성공률 1위를 기록한 것을 비롯 2003년 올스타전에서 외국인 선수로는 첫 3점슛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허웅(29·186㎝)은 이러한 DB의 슈터 계보를 잇고 있는 선수이자 간판스타다. 잘생긴 외모로 인해 여성 팬들이 많아 ’원주 아이돌‘로 불리기도 하는데 인기 하나 만큼은 DB를 넘어 10개 구단 최고 수준으로 꼽히고 있다.

그가 2014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순위로 뽑힌 것은 DB 입장에서 큰 행운이었다. 아마 시절의 명성, 기량 등을 감안했을 때 KCC픽이 유력했으나 아들을 지명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긴 허재 감독이 다른 선수를 선택하면서 DB가 허웅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KCC와 DB의 향후 행보가 크게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허웅은 아마 시절부터 상당한 심리적 부담을 안고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농구 대통령‘ 허재의 장남이라는 사실은 본인을 알리는 데는 좋았을지 몰라도 주변의 지나친 관심에 시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 또한 컸다. 더욱이 전체 1순위 출신 동생 허훈(26·180㎝)이 국내 최고 수준의 가드로 발돋움하면서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히 주전급으로 활약해도 잘한다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이유다.

거기에 시즌을 앞두고 DB는 주전가드 두경민을 내주고 강상재를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실행시켰다. 포워드진 강화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스타일이 비슷한 공격형 가드 2명 중 사실상 허웅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팀이 자신을 인정해줬다는 점은 고마웠겠지만 한편으로는 부담도 클 수 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선수 같았으면 멘탈이 흔들릴만한 입장에서도 허웅은 이를 악물고 성장을 거듭했고 올 시즌 성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아직 시즌 초이기는 하지만 허웅은 6경기에서 평균 16득점, 2.8리바운드, 3.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커리어하이 시즌 모드를 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소속팀 DB 역시 상위권 싸움을 하면서 잘나가고 있다.

여기에는 본인의 플레이 스타일을 잘 알고 거기에 맞게 발전한 부분이 크다는 평가다. 동생 허훈같은 경우 드리블, 돌파능력, 외곽슛 등을 두루 갖춘 전천후 듀얼가드다. 1번치고도 신장이 작은 편에 속하지만 탄탄한 근육질 신체를 통해 이를 상쇄한다. 에이스 본능까지 강해 볼을 오래 소유하면서 이른바 ’북치고 장구치는‘플레이를 선호한다.

어떤 면에서는 형 허웅도 비슷하다. 동생과 마찬가지로 배짱도 두둑하고 꾸준한 웨이트를 통해 파워와 신체밸런스를 지속적으로 강화시켰다. 스피드, 드리블, 슈팅력 등에 고루 능하다.

신장 등을 감안했을 때 허훈처럼 1번 듀얼가드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허웅은 자신이 2번 슈팅가드로서 좀 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슈터로서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슈팅력 하나만큼은 동생보다도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부지런히 공간을 찾아다니고 동료의 패스를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오프 더 볼 무브‘에 주력했다. 슈팅가드에 더 적합함에도 1번을 욕심내는 선수도 많은 현 트랜드에서 허웅의 판단은 매우 지혜로웠다.

슈터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다른 능력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단순히 받아먹기만 하는 슈터가 아닌 스피드를 내세운 돌파, 거리를 가리지 않고 작렬시키는 무빙샷에 빈 공간의 동료들을 봐주는 패싱능력까지, 전천후로 코트를 휘젓는 올라운드 슈터가 되어가고 있다. 현재의 페이스만 유지해간다면 동생 허훈에게도 크게 꿀릴 것이 없어보인다.

과연 허웅은 ’원주 아이돌‘에서 ’원주 에이스‘로 거듭날 수 있을까. 올 시즌 DB의 성적이 허웅에게 달려있다.

글 / 김종수 객원기자

사진 /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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