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적 일상회복, 뉴 업노멀과 호모 심비우스
나는 최근 김부겸 국무총리와 함께 ‘일상회복지원위원회’ 공동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일상회복지원위원회에는 경제부총리와 사회부총리, 그리고 행정안전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질병관리청장 등 8명의 정부위원들과 경제·사회·방역·의료 등 각 분야의 전문가 30명이 민간위원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이곳은 경제민생, 사회문화, 자치안전, 방역의료의 4개의 분과위원회로 나뉘어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일상회복 방안을 논의해 중앙대책본부에 전달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 뉴 애브노멀(New abnormal)이 아니라 뉴 업노멀(New upnormal)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해 1월 20일부터 어언 1년 9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든 코로나바이러스를 박멸 혹은 퇴치해 사태를 종식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박멸’, ‘퇴치’, ‘종식’ 등은 우리가 농경을 하며 해충 구제를 할 때 늘상 쓰던 용어들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들은 모두 우리가 전장에서 사용하던 말들이다.
그러나 해충이나 바이러스를 상대할 때에는 군대가 아니라 경찰처럼 행동해야 한다. 적을 섬멸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시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게 중요하다.
역사를 통틀어 우리 인류가 완벽하게 제거하는 데 성공한 바이러스는 천연두바이러스 하나 뿐이다. 바이러스와 인간은 자연의 다른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서로 영향을 끼치며 공진화(co-evolution)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는 언젠가는 맞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우리 국민은 그동안 참으로 성실하게 정부의 방역 지침을 따르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백신접종률이 세계 최고 수준에 다다르며 조심스레 일상으로 되돌아갈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시점에 일상회복지원위원회가 만들어진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내가 만일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더라면 나는 위원회 명칭을 일상 ‘복원’ 지원위원회라고 불렀을 것 같다.
대놓고 ‘일상 회귀’라 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여전히 ‘회복’이라는 단어에는 예전으로 되돌아가겠다는 희망과 의도가 담겨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안정화되더라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일상(New normal)’을 얘기하지만 이 표현에는 예전의 일상이 정상적(normal)이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예전의 우리 일상이 정상적이었으면 우리가 이런 끔찍한 재앙을 겪을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우리의 구호가 은연중에 ‘새로운 비정상’ 즉 ‘뉴 애브노멀(New abnormal)’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두렵다.
엄청나게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팬데믹을 겪은 후 우리가 만들어낼 ‘새로운 일상’은 예전보다 훨씬 더 나은 일상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뉴 업노멀(New upnormal)’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 행동 백신과 생태 백신
이번에 우리는 엄청나게 운이 좋았다. 거의 500만명이 사망했고 경제가 파탄 났는데 운이 좋다니 무슨 실없는 소리인가 하겠지만, 예전에 이런 유행병이 발생했을 때 그에 대한 백신을 제조해 보급하는 데에는 적어도 10~15년씩 걸렸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에 1년도 안 된 기간에 훌륭한 백신들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 덕택에 가능했던 일이다. 과학의 힘으로 인류가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에도 우리가 여전히 운이 좋을 수 있을까?
운 좋게 또 1년만에 백신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기간 동안 또 다시 적어도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고 세계 경제는 다시 한번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앞으로 이런 사태를 반복적으로 겪어야 한다면 이걸 두고 운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작년 초에 백신 두 개를 제조했다. 바로 ‘행동 백신(behavior vaccine)’과 ‘생태 백신(eco-vaccine)’이다. 이번에 우리 국민은 손 씻기,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매우 잘 수행했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게 살고 있다. 전국민이 행동 백신 접종을 훌륭하게 이행했기 때문이다.
행동 백신보다 더 근원적이고 효율적인 백신이 생태 백신이다. 우리 인류에게 해로운 병원체를 자연계에서 인간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막아주는 백신이다.
그런데 생태 백신은 내가 인류 최초로 제안한 개념이 아니다. 그동안 모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자연 보호’라는 구호를 내가 ‘생태 백신’으로 바꾼 것뿐이다.
그동안 모두 “자연을 보호합시다”라는 호소를 건성으로 듣다가 이런 엄청난 재앙을 겪게 된 것이다. 이제 내가 ‘자연 보호’를 ‘생태 백신’이라 바꿔 부르는 순간 모두 동참해야 한다.
왜냐하면 백신은 사회 구성원의 적어도 70~80%가 함께 접종해야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그동안 우리가 자연을 너무 막 대하다가 이런 사달을 자초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었다면 이제 모두 생태 백신 접종에 동참해야 한다.
◆ 대한민국의 집단적 현명함과 역동성
일상회복지원위원회는 그동안 힘겹게 지켜온 방역 기준을 완화해 시민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루아침에 훨씬 편안한 삶을 영위하게 해드리고 곧바로 해체되는 위원회가 아니다.
코로나19를 겪고 난 우리 사회가 이전보다 훨씬 업그레이드(upgrade)된 사회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적어도 1년 동안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바쁘다고 바늘 허리 꿸 일은 결코 아니다.
우리보다 먼저 일상 회복을 시도하고 있는 영국이나 싱가폴 같은 나라들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위원회 첫 회의 모두발언에서 ‘촘촘하게’와 ‘꼼꼼하게’를 강조했다. 우리는 지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얘기만 하고 있는데 그들 뒤에는 조직화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더 많은 국민이 있다. 그들의 사정까지 꼼꼼하게 살피며 촘촘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나 위원회가 가야 할 길은 우리 사회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어쩔 수 없이 시행착오도 저지를 것이다. 모름지기 모든 위원회의 최고 덕목은 소통이다. 그러기 위해 여럿이 모여 앉은 것이다. 서로의 얘기에 귀 기울이며 꼼꼼하고 촘촘하게 조율해 갈 것이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나는 몰라보게 향상된 우리 국민의 민도에 스스로 감탄하고 있다. 국내 많은 언론들과 일부 정치인들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은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에 비해 효율도 낮고 혈전 등 부작용도 심한, 말하자면 ‘이류’라는 근거 없는 ‘백신 불안’을 조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5세 이상에 대한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 5월 27일 1차와 2차 접종자가 무려 71만 1194명에 달했고, 이 중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은 사람은 57만 5176명으로 전체의 80%가 넘었다.
60∼74세 등 상반기에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1차 접종한 사람을 대상으로 2차 접종이 시작된 지난 8월 12일 오전 서울 관악구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에서 접종 대상자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두뇌에서 가슴까지”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실제로 이 거리는 성인의 경우 약 36센티미터밖에 안 되지만, 아는 것을 실행에 옮기는 데 뜻밖에 많은 시간이 걸림을 지적하는 속담이다.
내 개인적인 관찰에 따르면 우리 국민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속담이다. 우리는 일단 머리에서 이해되면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실행에 옮긴다.
물론 머리가 이해하는 과정은 치열하다. 온갖 상반된 의견이 난무하고 차분히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숙고하기보다 다짜고짜 공격부터 퍼붓는다. 합리적 비판보다 고성을 동반한 흠집내기식 비난이 판친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이런 와중에도 사실에 입각한 전문가들의 설명이 쉼 없이 이어지고 우리 국민은 끝내 옥석을 가려내어 현명하게 행동한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역동성이다. 나는 우리 국민의 집단적 현명함과 역동성을 믿는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야 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나는 그동안 우리가 이 속담의 깊은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는 이 속담이 무엇을 말하는지 또렷이 알게 됐다.
예전에 우리가 백신을 제조한 다음 누가 먼저 맞을 것인가에 대해 이번처럼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있었을까? 이번에 우리는 좁은 요양원 공간에 함께 모여 있는 어르신들과 코로나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간호사 선생님들을 먼저 접종하자는 데 합의했다.
나는 우리 사회가 이런 논의를 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진보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모든 계층이 함께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절대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확실하게 경험했다.
‘함께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우리 스스로 터득했다. 이런 연대 의식으로 무장하고 이 팬데믹 재앙으로부터 함께 빠져나가야 한다. 우리 ‘일상회복지원위원회’가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국민 여러분도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해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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