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내몰린 이들의 땅이 전지현·주지훈 부른 이유는?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1. 10. 26. 11: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OSEN=김재동 객원기자]  ‘사람이 죽는다’는 표현 중 하나로 ‘골로 간다’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은 엄밀히 ‘고택골로 간다’의 준말로 고택(高宅)골은 서울 은평구 신사동의 옛마을 이름으로 공동묘지가 많았다고 한다. 고택골이란 표현은 산대놀이 사설에서 나와 이후 ‘죽다’의 속된 표현으로 쓰여왔다.

하지만 ‘골’이 ‘고택골’이 아닌 ‘골짜기’를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다. 빨치산 토벌과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건 국방군이건 사람들을 골짜기에 몰아넣고 학살하면서 골짜기로 가면 죽는다는 의미로 ‘골로 간다’는 곧 죽음을 의미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이 주장의 배경에 등장하는 것이 지리산이다.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빨치산 토벌에 나섰던 국방군 11사단은 사단장 최덕신이 주창한 일종의 초토화 작전인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을 시행했다.

즉 인민군이나 빨치산이 주민들로부터 식량을 확보하거나 인력과 물건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산간벽촌의 물자를 옮기고 가옥을 파괴하는 것이었는데 이 작전 수행 과정에서 함평·거창·고창 등 수많은 양민 학살이 벌어졌다.

지리산 빨치산은 48년말부터 토벌이 끝난 53년까지 5년간 무려 1만 717회 교전했고 군경 6,333명, 빨치산 1만1,000명 이상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지리산은 한국의 산 중에서도 특히 피를 많이 머금은 산으로 꼽힌다.

그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김은희 극본, 이응복 연출)이 순항을 시작했다. 지리산 국립공원 지킴이 레인저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23일 첫회 시청률 9.1%로 시작해 24일 2회분에선 10.663%(닐슨 코리아)를 기록하며 손쉽게 10%선에 안착했다.

이 드라마가 차용하고 있는 판타지는 빨치산 스토리로 보인다. 주인공 강현조(주지훈 분)와 서이강(전지현 분)이 사용하는 암호같은 표식도 빨치산이 사용하던 표식이고 2화 말미 햇병아리 레인저 이다원(고민시 분) 앞에 등장한 의문의 남자 복색도 빨치산 행색으로 보인다.

시놉시스상 강현조는 육사 출신의 전직 육군 대위로 지리산 행군 훈련 때 부하를 잃는 사고를 당한 뒤 지리산에서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의 환영을 보게 된다. 강현조는 왜 어떻게 자기 눈에만 보이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산이 사람들을 살리라고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발견한 의문의 노란 리본. 누군가 등산로 표식을 이용해 사람들을 조난으로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유도된 조난자에 대한 살인까지..

드라마는 1화부터 갑자기 2년을 건너뛴다. 서이강과 신입 강현조가 만나 첫 조난자 중학생을 구조한 직후다. 그리고 서이강은 휠체어를 탄 신세로, 강현조는 코마상태로 등장한다. 생뚱맞은 전개고 뜬금없는 반전이지만 확실히 궁금증은 불러일으켰다.

출연자들의 대사를 통해 두 사람은 모종의 이유로 설산을 올랐고 조난을 당했음이 알려진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조대진(성동일 분)의 질문에 서이강은 “아무 일 없었어요. 우린 그저 산을 지키려했어요”라고 답한다. 그들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산을 지키려고 설산을 올랐을까?

그리고 조대진의 책상 서랍에서 발견되는 노란 리본. 조대진은 과연 노란 리본의 범인일까? 확실히 지리산을 그만큼 잘 아는 이도 없고 설정상 반평생을 지리산과 함께 한 탓에 가족마저 떠나 보낸 이로 나오니 그럴듯도 하다.

하지만 그 역시 노란 리본에 의문을 품고 범인을 추적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사명감 투철하고 구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평생을 바친 지리산을 어지럽히는 누군가를 찾아내 응징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3개 도, 5개 시와 면에 걸쳐있는 지리산은 내몰린 이들의 땅이었다. 그 넓은 품으로 인해 패전한 동학 의병들과 일제 징용·징집 기피자들의 도피처가 됐고 빨치산들의 해방구가 되기도 했다.

영혼들이 있다면 비록 엄혹한 환경을 제공했음에도 그들에게 품을 내주고 안식을 주었던 지리산을 아끼고 사랑했을 법 하다. 그리고 그 산에서 벌어지는 불의함을 못견뎌할 지도 모른다.

“저 산 위에서 누군가가 저에게 신호를 보내요. 그게 누군지 알고 싶어서 왔어요.”라는 서이강의 대사. 서이강과 강현조에게 전해지는 메시지의 발신자는 누구일까? 정말로 산이 부르고 그 산 속에 깃든 영혼들의 부름이었을까?

어색한 CG, 튀는 전개에도 시청자들의 호기심은 삶과 죽음의 경계 ‘지리산’으로 향한다.

/zaitung@osen.co.kr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